단지 혼자 있고 싶었다.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는 가족들을 완강하게 밀어내고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손끝이 아리고 뼛속에 바람이 든 것처럼 덜거덕 거렸다. 월세에서 전세로 너나없이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이십년 뚝방촌 생활을 청산하고, 당당하게 아파트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날 아내는 이삿짐을 옮기다가 바닥에 깔아둔 신문지 위에서 짜장면을 비볐다. 살면서 정돈할거라며 대충한다고 밀어두었지만 힘든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렇지만 아내의 얼굴은 땀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세상을 다가진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큰 선심을 베풀듯 야무지게 비빈 짜장면을 내 앞으로 슬쩍 밀어놓고, 비릴 랩을 뜯어 짜장면을 또 비비기 시작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어찌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는지 지금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복 많은 남자야,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도 내 덕분인줄 한시도 잊어선 앙되용. 아내는 용감하게 입안에 가득 짜장면을 문채 크게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으면서, 햇살이 환하게 베란다 한쪽을 채우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문득 린드버그의 일대기를 그린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와 오버랩되어 내 집안에서 쌓이는 햇살이 희망처럼 느껴졌다. 무모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도전해서 성공을 이뤄내는, 인간한계의 린드버그와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 이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아내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면서 피곤에 절은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이것이 내게는 파리의 등불이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각자 기억의 서랍 속에 넣어두었는데 이제는 한사람만 서랍을 열어 확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혹시 기억 저편에 내가 편한 데로 상당부분 편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꼭 아내가 동참한 속에 함께한 세월을 추렴해야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폐단을 막을 수 있을 건데, 아내여, 왜 당신은 부재중인가. 아내와 종종 찾던 놀이터 앞에서 멈췄다. 울타리를 지나서 잔디를 밟고 모래를 밟고 놀이터 의자에 앉았다. 학원이며 코로나다 해서 이미 놀이터가 텅 비워 버린 지 꽤 된 것 같았다. 그만큼 침묵 속에 갇힌 놀이터의 흔적이 더 깊어 보였다. 한 때 엎치락뒤치락하는 방대한 꿈을 가진 아이들로 가득했던 한 시절이 그리워졌다. 딸애도 놀이터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와 백일홍으로부터, 미끄럼틀과 시이소와 하늘사다리로부터. 꿈을 공급받으며 뛰어 놀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날아오르기 위해 제법 긴 시간을 뛰어다니며 넘어지면 일어서는 정교함을 배우기도 했다. 우리가 가르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궁금함을 딸애가 품을 때까지. 아내는, 놀이터에서 높고 행복한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계절이 지고 한 계절이 피어날 때마다 웃고 웃는 아이들의 함성이 있는 곳에 딸애를 맡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울고 우는 아이들은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상상력으로 발돋움한다고 내게 귓속말로 전해주기도 했다. 놀이터는 한 폭의 초심이라고 명백하게 선을 그어 놓았다. 자칫 중심을 잡지 못하거나 삶이 무기력해질 때 놀이터 의자에서 마음을 다잡아 내일을 도모하라고 했다. 저기, 자유를 닮은 하늘사다리의 철봉을 옮겨 잡을 때마다 여전히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는 자세를 익히라고 했다. 족집게 과외선생처럼 밀착마크로 시이소의 정직성을 얘기해주면서 무게의 기울어짐은 속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아내가 지금 보고 싶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