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을 깼다. 시계바늘 소리가 요란했다. 이만큼 살았으면 숨소리처럼 익숙하다고 생각해야 할 시계소리이지 않는가. 배구공만한 어둠이 군데군데 굴러다니고 있었다. 손을 뻗은 옆자리가 허전했다. 또 다른 시간 속에 들어온, 또 다른 세상 같았다. 생각해보니 늘 아내의 결정에 믿고 따랐다. 하물며 새벽에 잠을 깼을 때, 더 자야 되는지 영화채널을 켜야 하는지 아내가 결정해주었다. 그런 소소한 것들이 익숙하고 편했다. 한 번도 아내와 이별을 상상해보지 않았다. 이제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가와 버렸다. 아내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 혼란 속에서 투정하는 아이처럼 헤매야 할까. 새벽은 목젖을 누르고 삶의 의욕마저 가져갔다. 두려움은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아내가 있으면 뽕망치로 쉴 새 없이 두더지 머리를 명중시킬, 아쉬움으로 한 번 더 뒤척였다. 순간 가스냄새를 맡았다.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코를 킁킁 거렸지만 더 이상 가스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쉽게 지나가면 안 된다고 아내가 말하는 것 같았다.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혀 누수를 확인했다. 이젠 정말 홀로서기를 배워야겠다. 가스누수는 없었다. 그만큼 아내 빈자리에 예민했을 수도 있었겠다. 뒤틀린 일상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옥죄여 올까.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정신이 맑아졌다. 머리맡에 차키가 만져졌다. 십년 전 마이산 일출을 찍기 위해 일행이 되었던 한사람이 떠올랐다. 조금은 황당했지만, 굳이 만난다는 생각보다는 찾아간다는 생각으로 서랍을 뒤져 명함을 확인했다. 여태껏 살고 있다는 확신도 없었고 반겨준다는 믿음도 없었다. 그냥 다녀 올 곳을 선택한 의미에 더 비중을 두었다. 어쩌면 무박이일을 함께 움직인 짧은 인연을 기억하고 있을까. 설사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손톱만큼도 섭섭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돌아서 오면 되니까. 허긴 알아본다고 해도 돌아서 오는 짧은 인연이 우리에겐 전부니까. 내가 선택한 홀로서기의 첫 번째로, 희미한 기억 속 의외의 인물 찾기였다. 우상열은 부산에 살고 있었다. 어딘가 매복해있던 열정이 살아난 듯, 경쾌하게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십년 전 헤어지면서 한번 놀러 오라고 건네받은 명함으로, 찾아가는 놀이에 왠지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IC로 접어들어 분기점에서 부산행 고속도로에 차를 얹었다. 아침이 저 멀리에서 밝아오고 있었다. 잠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고속도로는 차를 쉽게 돌릴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매력을 고속도로는 가지고 있었다. 군위영천 휴게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승용차는 한산했지만 화물자동차는 밤낮을 달리는 듯 주차장에 제법 자리 잡고 있었다. 순두부 백반으로 초행길의 불안함을 희석시켰다.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본능적으로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를 써야만 행동이 자유로운, 코로나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세상에 조금은 짜증이 났다. 한 번도 맞닥뜨리지 못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었다. 마스크 패션쇼를 하는 세상을 정말 꿈이라도 꾼 적이 있었을까. 인간이 만든 공해와 바이러스로 설자리가 점점 협소해 진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고 있을까. 문제를 맞히지 못할 때 벽이 다가와 결국은 물에 빠트린다는 게임이 코로나의 확산과 너무 닮아 있었다. 차안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내의 죽음과 부산행 고속도로와 답답한 마스크가 뒤죽박죽 엉키고 있다고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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