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을 지그시 밟았다. 제한속도 100km 도로에서 벗어나자, 해방감에서 달리고 싶었다. 평일에 움직인 덕분에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햇살이 잠깐 기울어진다 싶더니 빗방울 몇 방울이 차량 앞 유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려의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단지 그뿐, 윈도우 브러시를 작동하지 않았다. 130km를 밟고 있었다. 4륜구동 중고차를 구입한지 10년째다. 사진에 미쳐서 전국을 이 잡듯 쏘다니기 위한, 궁여지책의 일환이었다. 빗길, 눈길, 비포장도로, 모랫길이나 진흙탕까지 구동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었다. 그전 차주가 애지중지했다는 말만 믿고 덜컥 계약을 하였다. 역시 사랑받고 굴러다닌 것을 티내기 위해, 한 번도 속 썩히는 일이 없었다. 거기다가 큰 덩치의 안착감이 늘 기분 좋게 했다. 빗방울이 약간 굵어졌다. 시야를 넓게 가지려고 가슴을 폈다. 윈도우 브러시가 잘강잘강 움직였다. 칠월 초순의 바람이 연녹색 잎사귀를 매단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십년 전 사진 동호인으로 만나서 무박이일 인연으로 명함을 건네받아, 지금 찾아가고 있는 뜬금없음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아내를 떠나보낸 빈자리가 나를 꼬드긴 것일 게다. 딸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운전 중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지내세요? 식사는 제때 하세요? 거기도 비가 오죠? 49재 때 미처 못 태운 엄마 소지품을 마저 태울게요. 힘드시겠지만 아빠도 빨리 본래의 자리를 찾아 씩씩하게 일상에 복귀하셔야죠. 살갑던 두 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아빠마저 쓰러지면 제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그래요. 혼자 밥 해먹지 말고 주변 식당에서 세끼, 해결하세요. 아꼈다가 유산 물려줄 생각은 절대하기 없기. 호호. 일일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딸애의 성격이, 통화 중에는 편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숨소리만 한 번씩 넣어주면 한 시간은 이어 갈 것 같았다. 어쩌면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될 질문과 대답을 들었을 때의 부담이 맞물려, 딸애는 일방적인 안부전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빗줄기가 거칠어졌다. 속도를 줄였다. 짙은 회색구름들이 길게 도열한 하늘이 더 낮아져 있었다. 멀리 차들이 휘청 거리면서 검은 물체를 피해가는 것이 빗줄기 속에서도 보였다. 비상등을 켜고 서행으로 다가갔다. 목이 꺾인 고라니가 힘겹게 누워 있었다. 로드 킬을 당한 모습은 처참했고, 빗물에 번진 핏물은 가슴을 아리게 했다. 기겁을 하고 부딪힌, 운전자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의 선상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갓길로 차를 몰아 비상등을 켜둔 채 정차를 했다. 우산을 펼쳐 밖으로 나갔다. 뒤차도 역시 갓길에 정차를 하고 도와주려는 듯, 차문을 열고 나왔다. 가벼운 목례로 서로 눈이 마주쳤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뒷다리 하나씩을 잡고 축 늘어진 고라니를 갓길로 옮겨 놓았다. 웬일인지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단지 먼저 보았다는 이유였다. 휘청 거리며 앞에서 비껴간 사람들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거나, 얼마쯤 가다가 도로에 두고 온 고라니를 방치한 자신을 책망했으리라. 뒤차 운전자에게 물티슈를 건네주며 이번에는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곧 고개를 꾸벅 숙인 답례를 받았다. 시동을 걸었을 때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가르릉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