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굵어졌다. 주위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빗방울 튀는 소리가 차안에 가득했다. 고속도로는 안개로, 시야가 방해를 받고 있었다. 다행히 차량은 많지 않아서 차선을 쉽게 바꿀 수 있었다. 휴게소와 졸음쉼터와 갓길로 여차하면 운전대를 돌린다는 생각으로 속도를 구십 킬로로 늦춰서 달렸다. 잠시 가까운 IC로 빠져 아무 곳에나 일박을 하고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도 가졌다. 이 빗줄기를 헤쳐가기에는 육체도 정신도 너무 황폐해져 반듯이 서있는 지금의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수목장 묘지에 아내를 묻고 온 날, 센스 등이 켜진 입구에서 실내등 전원을 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붙박인 신발장처럼 다리가 저리도록 서있었다. 센스 등마저 꺼지고, 밖에서 하나 둘 모아지는 빛의 밝기로 소파에 앉았다. 손가락을 들어 올릴 한 톨의 힘이 없다고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내의 죽음은 아니지만, 이 절망감이, 이 상실감이 엄청나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악악, 목청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입고 있는 검은 상복을, 우두둑 단추를 뜯으면서 벗어버리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한발을 옮길 때 마다 밟힐, 아내의 속살 같은 시간들이 상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떨구었다. 왜 이리 두렵고 자신이 없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내의 방이 나직하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 가장자리에 손잡이가 어둠속에서 반딧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내의 손 그물에 쥐어 쥔 채, 수도 없이 열리고 닫혔을 손잡이는 필요 이상으로 다가왔다. 이별을 예감했을까. 아내는 각방을 제안해 왔다. 처음에는 약간의 난색을 표현했지만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도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설득 앞에, 허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딸애 결혼과 맞물려 빈방이주는 공허함이, 채움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그날 소파에서 구겨져 잠이 들었다. 아침인지 낮인지 모를 눈부신 햇살이 잠을 깨웠다.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목청껏 소리를 질렀는지 알 수 없지만, 상복 단추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내 방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아내가 왔는지 내가 들어갔는지 기억이 없었다. 다만 불을 켜지 않고 어둠속에 잠겨있던, 내가 사는 이 집안의 풍경만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애써 어젯밤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예기치 못 할 무엇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제의 감정 안에서만 가능했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런 감정, 그런 시간, 그런 장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창원터널 이정표가 보였다. 무의식중으로 속도를 줄였다. 도로가 미끄럽다고 생각했다. 속도를 줄였지만 속도감은 여전했다. 불현 듯 머리끝이 서는 전율을 느꼈다. 많지 않은 차량이라고 생각했던 터널 입구에서 차들이 엉켜있었다. 터널 안에는 연기까지 새여 나오고 있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뛰어 나오는 여자가 빗줄기에 가려 현실감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틀림없이 터널 안은 아비규환일 것이다. 비상등을 켜고 백미러로 앞차와 거리를 상기시켜 주었다. 그렇지만 이 빗줄기 안에서 비상등의 존재를 알기나 할까. 앞차와 충돌은 간신히 면하고 비상등을 켜고 있지만, 앞에서 막힌 터널과 뒤에서 밀고 오는 차들로 속수무책임을 직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