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駙馬)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이번호에서는 중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알아보자. 원래 부마(駙馬)는 중국 고대 제왕 사위의 호칭이었다. 제서(帝婿), 주서(主婿), 국서(国婿) 등으로 불렸는데, 모두 위관(尉官, 준위, 소위, 중위, 대위의 초급 장교를 통틀어 이르는 말)으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부마도위(駙馬都尉)는 부마의 말(馬)을 장악해서 관리했다. 삼국시대 위나라의 하안(何晏, 193?~249,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학자)은 제서(帝婿)의 신분으로 부마도위의 관직을 받았고 이후 진나라 두예(杜預, 서진의 학자 겸 군사전문가)가 진선제(晋宣帝, 149-219)의 안륙공주(安陸公主)를 부인으로 맞이했고 왕제(王濟)는 사마소(司马昭, 중국 삼국 때의 위나라의 정치가 겸 군사가)의 딸 상산공주(常山公主)를 부인으로 맞이했는데, 모두 부마도위의 호칭을 받았다. 위진(魏晋)시기 이후, 제서(帝婿)는 관례대로 부마도위의 칭호였지만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관리는 아니었다. 청대에는 액부(額駙)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부마는 공주 남편의 호칭으로 되었고 청대에 오면 부마는 액부라 부르게 된다. 부마(駙馬)라는 단어의 원래 뜻을 살펴보면, 고대에 말 몇 필이 공동으로 마차 한대를 끌 때, 끌채 매운 말 외의 말은 모두 "부(附)"라고 불렀다. 《설문해자(說文解字)·馬部》중에 기록되기를, "부(附)는 보조말이다. (附,副马也)" "부(副)는 두 번째이고, 정식이 아닌 차는 모두 부마(副馬)로 된다. (副者贰也……非正驾车皆为副马)" 예전에 황제가 행차할 때는 안전의 문제로 인해 많은 말이 함께 출행하는데, 특히 황제 본인의 행적이 외부에 쉽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탄 차를 정차(正車)라 하고 이 정차와 형식이 완전히 같은 부차(副車)를 여러 개 만들어 함께 이동했다. 세상 사람의 이목을 가려서 황제가 어디에 타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게 하여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다는 취지이다. 부차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진(秦)나라 때, 장량(张良)이 보랑사(博浪沙, 지금의 하남 원양현(河南原阳县))에서 진시황의 행차를 틈타 진시황을 시해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항상 의심이 많았던 진시황은 좋아하는 행차를 포기하지 못하고 매번 나가는 행차 때마다 정차(正車)와 같은 모습의 많은 부차를 동행한다. 그래서 진시황은 다행히도 장량의 공격을 피하게 된다. 당시 황제의 시중 중에 정차를 담당하는 관직이 있었는데 봉차도위(奉車都尉)라고 했고, 부차(副车)를 담당하는 관직을 부마도위(駙馬都尉)라고 칭했다. 부마도위는 양한 시기 황제 제왕의 외척 훈신들의 아들 손자가 담당이었다. 그래서 후세에 이런 것들이 관례가 되어 내려갔는데, 보통 공주와 결혼한 사람을 모두 부마도위로 삼았다. 한족 뿐 아니라 요, 금 등의 거란, 몽고에서도 제서(帝婿)를 부마도위라 칭했다. 《요사(遼史)·百官志》에 "부마도위부는 공주 숙소의 일을 담당한다. (驸马都尉府掌公主帐宅之事。)" 라고 기록되어 있다. 명청 시기 이전에 부마의 등급은 높지 않았고 금나라 부마도위도 높지 않아 단지 정4품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 때 와서 부마는 액부로 불렸으며 지위도 비교적 높아지고 대단해졌다. ** 사진 제공 : baidu.com** 필자 메이칭의 카페 : http://cafe.naver.com/orangewo8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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