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차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터널 안에서 한차례 폭발음이 들렸다. 불꽃이 튀었고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빗줄기가 약해졌다.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터널 안에서 뛰쳐나온 여자가 갓길에 쪼그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사고가 이어질 것 같았다. 차문을 열고 나왔다. 칠월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몇 사람이 갓길로 나와서 부지런히 전화를 하고 있었다. 신고접수가 되었는지 견인차가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순간 상황을 감지 못한 차 한 대가, 정차된 차 뒤꽁무니를 사정없이 박아 버렸다. 허허벌판에 내몰린 듯 불안한 속에, 부딪히는 파열음은 그 자리에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 잇따라 목격된 연쇄충돌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차안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과 빠져나오려고 반쯤 몸을 빼낸 사람들, 비명이 가득가득했다. 누구도 선뜻 교통통제를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긴박했고 무서웠다. 심각성을 감지한 견인차들이 뒤에서 바리케이드를 쳤다. 싸이렌과 경광등으로 위험을 알렸다. 엠블란스와 119와 경찰차가가 시시각각으로 도착했다. 너무 끔찍하여 고개를 돌리거나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뒤 도로로 뛰어들었다. 차문에 끼여 울부짖고 있는 사람부터 구하고 싶었다. 여전히 터널 안은 불꽃과 검은 연기로 뒤덮여 얼마나 처참한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소방대원과 힘을 합쳐 찌그러진 차문을 열었다. 팔이 부러진 운전자가 들것에 실려 갓길로 나갔다. 아예 차문이 열리지 않아서 유리를 깨고 전기톱으로 찢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갓길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어차피 터널 안 상황은 그 누구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견인차가 엉켜있는 차들을 한 대씩 끌고 나왔다. 역주행 도로를 타고 가까운 IC로 끌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경찰의 신속한 교통통제가 마무리 되어 있었다. 부상자는 인근 병원으로 속속 실려 갔다. 갓길로 빠져나온 사람들도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빗방울은 훨씬 잦아들었지만, 끔찍한 사고 한 가운데를 목격한 마음은 심란했다. 빗방울에 섞인 핏물을 보았고 고막을 찢는 비명을 들었다. 생과 사의 사선에서 처절한 몸부림도 보았다. 외상이 없는지 살펴보는 간호사에게 짓이겨 진 내상(內傷)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아내의 죽음과 맞물린 터널 사고가 오래도록 내안에서 퉁탕 거릴 것이다. 가위도 눌릴 것이고 환영(幻影)도 볼 것이고 의욕도 없어질 것이다. 딸애에게 알리지 않았다. 가급적 걱정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혼자 해결할 수 있으면 비밀로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았다. 보험회사에서 전반적인 차 수리를 보장받았다. 터널사고로 실려 온, 작은 도시 병원이 환자들로 넘쳐났다. 병원의 위치를 서로 몰랐던 것 같았다. 묻고 대답하는 소리가 응급실까지 들렸다. 창원이라고 하네요. 창원! 창원에서 집까지 거리를 검색했다. 두시간정도 떨어져 있었다. 내가 만약 사고로 사망했다면, 딸애는 두 시간 내내 비통(悲慟)하게 운전하여 창원으로 찾아 올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함이었다. 오는 도중 딸애에게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진다면 무슨 면목으로 아내를 볼 수 있을까. 뒤죽박죽 심란한 하루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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