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사고를 겪은 뒤 얌전하게 집안에서 얼쩡거렸다.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국내 확진자 수가 감소되면, 이웃나라에서 증가 수로 돌아섰다. 지구인으로 살려면, 외출 시 마스크는 필수 아이템으로 정착되었다. 집안은 늘 정적(靜的)속에 갇혀 있었다. 아내의 빈자리가 커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꼈다. 마른 수건에 귤껍질 삶은 물을 적셔 가구 광을 내주던 아내가 떠올랐다. 찌든 때를 잘 녹일 수 있는 구연산 성분이 귤껍질에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가구를 닦을 때면 씩씩하게 보였다. 그런 아내 덕분에 반짝반짝 가구들이 살아있었다. 이제 누구도 목 늘어진 티셔츠나 보프라기 드러난 러닝셔츠를 베란다에 쟁여 놓진 않을 것이다. 지금 가구들이 살아있지만, 얼마 있지 않아 누르죽죽하게 빛을 잃은 채로 생기를 잃게 되는 이유 속에 포함되니까. 혼란스러웠다. 뚜렷하게 보이는 이정표도 없었고,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딱히 기발한 생각도 몰입할 근거도 없었다. 이 상태로 침몰하고 싶었다. 남들이 겪는다는 우울증 시초처럼 느껴졌다. 책장에서 책 제목을 보지 않고 손 가는대로 뽑아, 건성건성 책장을 넘겼다. 인상적인 문장을 만나면 표시해두는 버릇이, 밑줄 문장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닿았다. 수십 년 전 이런 문장에 꽂혀서 밤잠을 설쳤구나. 이런 문장을 인용하며, 주변에 지식 자랑을 했구나. 잠시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호미곶인데요.” 식탁위에 전화가 진동음으로 드르륵 울렸다. 저장해두지 않는 번호에 주춤 거렸지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약간 망설인 듯 주춤 거리다가, 대뜸 호미곶이라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워낙 못 믿을 세상이어서 순간 경계 자세를 취했다. “저 기억나세요? 창원 터널사고...” “아, 네. 기억납니다.” 화염이 휩싸인 터널 안에서 뛰어나와서 갓길에 서성대던 그녀 모습을 떠올렸다. 대단하다는 생각에, 운이 좋다는 생각이 합쳐져 대단히 운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 창원 병원으로 실려 갔고, 같은 병실에서 5일 입원해 있었다. 휴게실에서 몇 번 마주치고 병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미처 입력해두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 번호를 저장해 두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사는 곳이 호미곶이라 했다. 아내 죽음에 찾아온 공허를 메꾸지 못해, 부산 친구를 찾아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남편과는 오래전 별거중인데 한 번씩 목적지 없는 여행을 즐기다가, 그녀는 사고를 만났다고 했다. 호미곶에서 작은 찻집, 지킴이라고 한 것까지 그제야 생각났다. 병원에서 축 처진 목소리보다 한결 더 밝았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미모면, 곧 연락주실 줄 알았죠. 호호.” 살갑게 던지는 농담에, 조금 전 우울증을 걱정하던 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고립되거나, 낙오에 따른 대화단절의 염려가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은연중에 확인한 셈이었다.“전 선생님이 그냥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지금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계속 터널 사고를 겪은 뒤 얌전하게 집안에서 얼쩡거렸다.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국내 확진자 수가 감소되면, 이웃나라에서 증가 수로 돌아섰다. 지구인으로 살려면, 외출 시 마스크는 필수 아이템으로 정착되었다. 집안은 늘 정적(靜的)속에 갇혀 있었다. 아내의 빈자리가 커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꼈다. 마른 수건에 귤껍질 삶은 물을 적셔 가구 광을 내주던 아내가 떠올랐다. 찌든 때를 잘 녹일 수 있는 구연산 성분이 귤껍질에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가구를 닦을 때면 씩씩하게 보였다. 그런 아내 덕분에 반짝반짝 가구들이 살아있었다. 이제 누구도 목 늘어진 티셔츠나 보프라기 드러난 러닝셔츠를 베란다에 쟁여 놓진 않을 것이다. 지금 가구들이 살아있지만, 얼마 있지 않아 누르죽죽하게 빛을 잃은 채로 생기를 잃게 되는 이유 속에 포함되니까. 혼란스러웠다. 뚜렷하게 보이는 이정표도 없었고,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딱히 기발한 생각도 몰입할 근거도 없었다. 이 상태로 침몰하고 싶었다. 남들이 겪는다는 우울증 시초처럼 느껴졌다. 책장에서 책 제목을 보지 않고 손 가는대로 뽑아, 건성건성 책장을 넘겼다. 인상적인 문장을 만나면 표시해두는 버릇이, 밑줄 문장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닿았다. 수십 년 전 이런 문장에 꽂혀서 밤잠을 설쳤구나. 이런 문장을 인용하며, 주변에 지식 자랑을 했구나. 잠시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호미곶인데요.” 식탁위에 전화가 진동음으로 드르륵 울렸다. 저장해두지 않는 번호에 주춤 거렸지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약간 망설인 듯 주춤 거리다가, 대뜸 호미곶이라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워낙 못 믿을 세상이어서 순간 경계 자세를 취했다. “저 기억나세요? 창원 터널사고...” “아, 네. 기억납니다.” 화염이 휩싸인 터널 안에서 뛰어나와서 갓길에 서성대던 그녀 모습을 떠올렸다. 대단하다는 생각에, 운이 좋다는 생각이 합쳐져 대단히 운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 창원 병원으로 실려 갔고, 같은 병실에서 5일 입원해 있었다. 휴게실에서 몇 번 마주치고 병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미처 입력해두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 번호를 저장해 두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사는 곳이 호미곶이라 했다. 아내 죽음에 찾아온 공허를 메꾸지 못해, 부산 친구를 찾아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남편과는 오래전 별거중인데 한 번씩 목적지 없는 여행을 즐기다가, 그녀는 사고를 만났다고 했다. 호미곶에서 작은 찻집, 지킴이라고 한 것까지 그제야 생각났다. 병원에서 축 처진 목소리보다 한결 더 밝았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미모면, 곧 연락주실 줄 알았죠. 호호.” 살갑게 던지는 농담에, 조금 전 우울증을 걱정하던 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고립되거나, 낙오에 따른 대화단절의 염려가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은연중에 확인한 셈이었다.“전 선생님이 그냥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지금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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