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이에요.” 단호박 양갱을 한입 물고 생강라떼를 천천히 음미했다. 그녀가 준 팁을 따라하면서 새삼 감동의 표정을 지었다. 곧 도착할 저녁사이로 바다 물결이 오색 광채를 띄었다. 창 넓은 창가에서 파도가 부서졌다. 가깝게 갈매기가 날았다. 마스크를 한 연인들이 백사장을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맨얼굴로 부딪히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스크는 자연스러워졌고 코로나는 삶에 깊숙이 들어와서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다. 지구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앞으로 숱한 위협 속에서 강한 전사로 가는 ‘길 찾기’일까. 그녀가 던진 이름을 들으며 모처럼 마음이 부들부들해졌다. 이름에서 이런 촉감이 느껴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만큼 부드럽게 은영이라는 이름이 다가왔다. 같은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마주친 모습과 판이하게 달랐다. 창원터널 사고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응급실로 실려 왔었다. 단지 여자와 남자이기 전에, 환자로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자신의 부상정도가 경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주변 환자들에게 시선이 옮겨졌다. 그런 한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마주앉아 호기심어린 하나의 선상에 놓여 질 줄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한 치 앞의 시간에는 의외의 사건들로 가득하다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바다를 보면서, 자살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에게 들려주고픈 말을 쟁여놓았다. 미리 예상한 앞날로, 자살을 꿈꾸지 마라.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제일 안타깝게 생각된 실체가 확대되어 다가왔다. 지금의 고립이, 지금의 울분이, 지금의 슬픔이 무게의 전부가 아니다. 알고 보면 작고 소소한 문제에 부딪혀 순간적인 선택을 할 뻔한 자신의 오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시간도 만나봐야 이쪽이 옳은지 저쪽이 옳은지 알게 되지 않을까. 바다를 마주하면 삶의 가치는 쉽게 부둥켜 안어리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바다가 주는 메시지를,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은 울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네요. 마치 어머니가 만든 밥상보가 생각납니다. 하나의 조각천이 어우러져 색동밥상보가 되듯 바다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생각의 조각들이 ‘헤쳐모여’를 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도...철학적으로 말씀하시네요. 남자가 여자에게 철학적으로 다가오면 작업의 1단계라 하던데요. 호호. 그러신 건가요?” 나는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켜버린 무안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하게 했다. “요즘 워낙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선생님이 오신 그것만으로 힘이 나고 생기가 돕니다. 호호.” “제가 먼저 작업을 거는 게 아니라 박사장님이 먼저 작업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죠?” 간판 불을 켜기 위해 일어난 그녀의 실루엣에 노을빛이 촘촘히 달라붙고 있었다. 바닷가의 밤은 한목소리로 깊어지고 있었다. 젊은 연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먼 바다가 열린 문틈사이에서 마냥 철썩 거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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