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맞았다. 주차장 옆 돌문어상 그림자가 창가에 걸려 있었다. 내 곁에서 잠든 그녀에게 팔을 뻗어 팔베개를 해주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어젯밤 시간이 고스란히 옮겨와서 장면, 장면마다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그 놀라운 흡인력이, 덜컹대며 앞으로 나가고 있는 빈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은영이의 손길은 섬세했다. 나직하고 부드러웠다. 나팔꽃처럼 내안이 열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휘봉을 잡은 그녀에게 넓고 푸른 땅을 맡겼다. 하나의 움직임은 하나의 출구를 알게 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 길이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이, 참을 수없는 간지러움으로 몰고갔다. 목젖에 걸려있던 굵은 신음이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한음 한음을 골라내는 그녀의 지휘는 절정으로진입하고 있었다.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좀 더 버티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그녀의 사정권 안으로 빨려 들고 있었다. 왜 내가 이토록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지, 왜 내가 분수처럼 그녀에게 물을 뿜어내고 있는지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출항 준비를 위해 호미곶이 깨어나 있었다. 바다를 끄는 뱃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바닷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부지런해지는가 보다. 바다 바람만으로 충전된 몸을 사정없이 부딪기 위하여 오늘도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이 있었다. 잠투정을 하듯 은영이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가만히 그녀를 안았다. 시월이 목전인 구월 끝 무렵이었다. “선생님의 꿈은 뭐였어요? 설마 아직 꿈이 남아있는 건 아니죠?” 허긴 꿈이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세상은 잠시도 나를 버려두지 않고 먹이사냥 잡이에 내몰았다. 꿈과는 너무도 상반된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니다가 명예퇴직 행렬에 올랐다. 그런 내 꿈은 뭐였을까. 아주잠깐 주변에서 곤충이라는 곤충은 죄다 잡아서 집안으로 들여 놓은 적이 있었다. 사슴벌레, 무당벌레, 소똥구리,물방개, 반딧불, 사마귀, 메뚜기, 개미, 여치. 곤충채집통에 핀으로 고정하기도 했지만 가급적 산채로 잡아와 칸막이 친 어항에서 사육을 한 셈이다. 막연하게 장래희망으로 곤충 학자를 그려보기도 했다. 곤충의 생태와 진화에 눈 뜨기 전에 공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현실과 이상의 무게를 심각하게 느끼며 접고 말았다. “곤충학자요.” 왠지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점수를 더 줄 것 같았다. “곤충을 좋아하셨던가 보죠. 파브르 곤충기를 쓴 파브르처럼, 호호. 맞나요?” 파브르의 반열에 올려준 그녀의 배려에 무한한 감사의 뜻으로 이마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선생님도 제게 꿈이 있냐고 질문해 주실래요?” “은영씬 꿈이 뭐예요?” “고래잡이요. 이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구요.” “전 이미 중학교 때 고래를 잡았는데요.” “아이, 선생님도, 전 농담으로 넘어갈 만큼 얼렁뚱땅한 그런 꿈이 아니란 말이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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