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드락길을 따라 걸었다. 길 끝에는 등대가 마중 나와 있다고 했다. 굴곡지게 살아온 삶에 둥글둥글한 살이 붙은 여유가 느껴졌다. 먼 지평선이 그랬고 갈매기가 그랬고 파도가 그랬고 백사장과 갯벌이 그랬다. 탁 트인 햇살이 그랬고 하늘이 그랬고 구름이 그랬고 바람이 모이는 곳에 낙엽이 그랬다. 바람에 이골이 난 등대가 보였다. 마치 경보시합을 하듯 은영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도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속도감을 즐기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등대에 다다랐다. 파도의 부딪힘이 확성기를 틀어 놓은 듯 선명했다. 갑자기 엄청난 요의(尿意)를 느꼈다. 단지 달그락 거리는 파도소리에 다리가 오므려지는 현상을 처음 접하면서 괜히 민망해졌다. “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은영은 눈웃음으로 대답했다. 화장실을 찾기 전에, 모퉁이만 돌아 암석이 솟아오른 낭떠러지에서 오줌을 누었다. 그 와중에도 안전난간대를 피해 오줌줄기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낭떠러지 아래는 모두가 알몸으로 솟구치고 받아내고 탄력 있는 외침으로 먹먹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애당초 이곳은 정적이 어울리지 않았다. 저토록 긴 외침이 부딪히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내고 지퍼를 올렸다. 그 짧은 절차가 흠뻑 몸 안으로 들어와 뿌리를 내린 듯 친밀감이 증폭되었다. 은영은 등대 주변의 조형물처럼 어색하지 않게 어느새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뭍사람들은 하나같이 등대 앞에서 오줌이 마렵다고 하네요. 거추장스런 도시의 허물을 떼 내어, 하나로 동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몸 안에 반은 바다가 담겼어요. 그리고 서서히 바다에 중독될걸요. 호호.” 어딘가로 번지기 위해 만들어진 색이 흘러내리는 수채화 속으로 들어 온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가슴을 열었다. 힘껏 숨을 들이켰다. 육십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삶에 확신이 없었고 지지부진했다. 한번 닫히면 내내 열리지 않는 무덤을 향한 시간만이 허락되었다고 믿었다. 그만큼 생기를 불어넣을 아무런 건더기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전 분명 ‘만약에’를 붙였어요. 오래전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듯, 범고래를 찾아 바다를 떠돈다면 제 파트너가 되 주실 수 있나요?” 얼토당토 한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저의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내가 만만하게 보였구나. 망망대해에 떠돌 변변한 배 한척 없는 것도 문제지만 종이배도 접지 못하는 내게 너무 황당한 제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럴듯한 계획은 물론 있겠죠?” 생각과는 달리 불쑥 공감대를 가진 질문을 하고 말았다. 아마 낭떠러지를 타고 사선으로 뿜어져 나온 오줌줄기 탓이리라. “열악할지 모르지만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갈까 하는데요.” “참신합니다.” “범고래는 아군과 적군을 분명하게 가릴 줄 알아요. 피아구분이 뚜렷합니다.” “그것만 믿고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너무 무모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나는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가볍게 살아온 시간을 밟고 바다에 오를 발걸음이 은근히 기다려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