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시민들이 풍수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2016년 1월부터 우리 향토출신 풍수지리 전문가 양삼열(楊三烈)교수의 글을 연재한다. 이 글을 통해 올바로 정립된 풍수학문의 전달과 풍수인식에 대한 잘못된 사고 등 풍수전반에 관한 유익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함으로서 애독자 여러분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풍수적으로 보아 영남의 4대길지에 속하는 경주 양동마을은 본래 안강현이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어진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마을이라 하여 양동(良洞)or 양좌동(良佐洞)으로 불렀다. 그런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가 되었다. 이곳은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고 봉화의 닭실마을, 임하의 내앞마을과 더불어 영남의 4대 길지이기도 하다. 양동마을은 조선 초기 손소(1433~1484)가 이곳에 정착한 이래 그의 후손인 월성손씨와 그들의 외손인 회재 이언적(1495~1533)의 여강이씨가 같이 살고 있는 집성촌부락이다. 2006년에 발간된 경주시지(양동민속마을)에 의하면 여기 두 문중에서 조선조에만 문과급제 26명, 무과 14인, 사마시에 76인이급제하였고, 근래 들어서도 장관 2명과 더불어 판검사 30인 등 수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니 이러한 발복은 마을의 풍수적 입지조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양동마을은 풍수형국상 물(勿)字 형국의 명당으로 마을 뒤 설창산(163m)으로부터 4개의 산줄기가 내려오는데 첫 번째 줄기에는 향단(香壇)과 끝자락에 관가정(觀稼亭)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물(勿)字 형국에서 장풍과 더불어 지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줄기인데 두 번째 줄기에는 여강이씨의 종가집인 무첨당(無添堂) 그리고 세 번째 자락에는 월성손씨의 서백당(書百堂)이 자리하고 있다. 서백당은 양동마을의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가 1454년(성종15)에 건축한 전통가옥으로 월성손씨의 종택이다. 이곳에서 조선중기 문신이자 청백리인 우재 손중돈(1463~1529)과 조선조 최고 유학자로 손꼽히는 회재 이언적(1494~1553)이 태어났다. 따지고 보면 손소 역시 이 지역의 만호(萬戶) 류복하(柳復河)의 무남독녀에 장가들어 처가 곳으로 이거해 정착하였고 회재 선생도 손소의 외손이 되니 이 마을은 외손의 발복지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이래서 과거에 ‘양동 처녀면 선도 안 보고 데려 간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또한 서백당에는 삼현출생지지(三賢出生之地)라 하여 성현이 3명이나 태어날 수 있는 풍수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아직 태어나지 않는 마지막 한 인물은 꼭 손씨 가문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했다. 손중돈과 이언적 모두 외손이므로 문중에서는 ‘남 좋은 일만 시켰다’하여 이후에는 시집간 딸들에게 해산을 위한 서백당 출입을 금지시켰다고까지 한다. 이 마을의 전체적 풍수입지조건을 살펴보면 양택지의 기본조건인 전저후고(前低後高)와 더불어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었고, 수세(水勢)는 마을 앞에서 흐르는 기계천과 안강에서 올라오는 칠평천이 경주에서 올라오는 형산강과 만나 삼 합수를 이룬다. 특히 형산강은 남에서 북으로 마을을 향해 오는 역수형국으로 이 모두가 마을에 큰 부를 가져다주는 수세조건이다. 그리고 마을 앞에 보이는 성주봉은 수려하면서도 뾰족한 문필봉으로 양동 마을에 훌륭한 문사(文士)사 태어날 것을 미리 예언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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