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은 ‘작은 찻집’으로 돌아왔다. 꿈꾼 세상을 모두 펼쳐 보여 준 뒤 그녀는 부쩍 말이 없어졌다. 나도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왠지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찻집은 문을 열지 않았다. 셔터가 내려진 공간에 둘만의 적막이 고여 들었다.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 여전히 바다가 뒤척이고 있었다. 다만 고요하고 한없이 단조로운 일상 안에서 고작 TV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무슨 말이라도 걸고 싶었지만 은영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곧 쾌활하고 눈부시게 농담을 던질 것 같았다. 무엇이 그녀를 가로막고 있는지 모르지만 섣불리 행동했을 때 역효과가 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감안하고 있었다. 즉석 밥에 삼분카레를 얹어 저녁을 해결한 뒤 은영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빈틈이라도 보이면 옛날 개그라도 총 동원하여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팔베개를 하고 시선은 TV를 겨냥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화장실에 다녀온 은영은 조심스럽게 내 곁에 누웠다. 먼지 하나, 보푸라기 한 올까지 레이더망에 즉시즉시 감지되었다. 육체가 닿지 않았지만 파르르 그녀의 몸이 읽혀지고 있었다. 코끝에 솔솔 파고드는 그녀의 향기가 이미 온 전신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여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이런 내 행동이 웃기고 민망하긴 했지만 은밀히 허락된 공간 안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참고 있던 그녀의 웃음이 터질지 모를 일이었다. “제 기분을 방해하지 않고 지켜봐주어서 고마워요.” 다음 수순으로 옮겨가기 위해 자세를 틀었을 때 그녀가 내 눈빛을 보면서 말했다. “일부러 그렇게 무게를 잡고 있었죠?” “오늘 간 다무포 고래마을에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보냈던 유년시절이 자꾸만 생각나서 먹먹했어요. 이젠 조금 진정이 되네요. 그리고 확실히 선생님은 제 편이라는 걸 알았어요.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싶네요.” “그렇게 마음먹을 결정적 계기가 있나요?” 은영은 흘러내린 몇 가닥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한없이 밀착해왔다.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만하면 배려심도 합격이고, 복종심도 합격이고, 듬직함도 합격이네요. 백점 만점에 구십 구점이에요.” “일점은 왜 불합격이죠?” “뱃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일점을 깎게 되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에서 자라난,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이었어요.” “그러면 정말 범고래를 쫒을 생각이었군요.” “아버진 만선을 위해 범고래에게 먹이를 받쳤는데 저는 아예 범고래를 포획할 계획이에요.” “안됩니다. 틀림없는 불법입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어요. 우리 주위에 불법을 버젓이 저지르면서 한 번도 그만큼의 죗값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니까요. 이 세상, 이 사회를 탓하세요.” 은영의 혀가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그다음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