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생각보다 우리가 강한 상대라고 접수를 한 모양이었다. 수풀더미에서 상처를 혀로 핥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겨울 냉기가 독기 품은 눈빛에서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굶주린 뱃속을 어떻게 채울까, 창밖을 통해 지켜보았다.썰물에 밀려온 따개비와 삿갓조개와 소라와 고동과 게와 물고기들을 물이 빠진 갯벌에서 스스럼없이 물고 와서 성찬을 즐기고 있었다. 검정 도사견이 암묵적인 대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영도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저놈을 보란 듯이 굴복시켜야 했어요. 대장이 건재하니까 노랑이의 치명적인 상처도 곧 수습되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저놈들이 물러가기만을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무슨 방법이라도?”“지금이 가장 승산이 있는 시기에요. 짐승들은 자가치유가 인간들보다 훨씬 빠르다고 들었어요. 곡괭이에 발등을 찍힌 노랑이가 쩔뚝거릴 때를 틈타 우리가 선재공격을 하면 어떨까요? 야행성이 아니니 십중팔구 깊은 잠에 빠져있는 밤이 적당하겠네요. 디데이는 오늘밤으로 정하고 이번에는 곡괭이 맛을 검정이에게도 선물해야겠어요.”딱히 새로운 의견을 내기에는 너무 뻔한 대치상황이 말문을 닫게 했다. 이럴 때 일수록 간단명료한 방안이 정답일 때가 많았다. 가령 머리를 너무 굴리다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더욱 꼬여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르기 일쑤였다. ‘남’이라고 하면 ‘북’, ‘동’이라고 하면 ‘서’라고 주저없이 대답하듯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 타당했다.다만 주춤거리는 점은 식별이 어려운 밤이라는 사실과 헤드랜턴 전등불에 잠을 깬 도사견들의 예상된 공격이 두렵다고 느껴졌다. 헤드랜턴의 한정된 불빛에 의존한 나에 비해, 후각의 광범위한 파죽공세를 펼칠 도사견들의 승리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혹시 다른 방안이 없냐는 투로 은영이를 쳐다봤다.“제가 선생님 뒤를 따르겠어요. 죽어도 함께, 살아도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 드릴게요. 수풀더미도 분명하게 우리의 영토라는 것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저놈들이 어떻게 이 섬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쫒아낼 필요는 있다고 봐요.”은영은 분명하고 확고했다. 어떤 반론도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었다. 밤의 급습작전을 위해 삼겹살로 힘을 비축했고 낮잠으로 더욱 힘을 한곳으로 모았다. 익숙한 곡괭이 스윙이 되기 위해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은영이가 일대일 맞춤 트레이너처럼 지켜보고 있다가 자세까지 바로 잡아주었다.작전명은 ‘춤추는 곡괭이’로 정해졌다. 시간은 새벽 한시, 참여인원은 ‘우리’로 마무리 되었다. 약간은 남자의 자존심이 그녀의 참여를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될 뿐, 솔직히 무섭고 떨렸다. 개는 인간 가까이에서 친화적인 복종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하지만 막상 송아지만한 잡식성 도사견과 마주하게 되면 그 말이 쑥 들어가도록 오금이 저려왔다.무슨 이빨이 그렇게 크고 저돌적이게 보일수가 있는가. 무슨 발톱이 그렇게 날카롭고 공격적일 수가 있는가. 온몸이 경직되는 눈빛과 울부짖음은 또 어떠한가. 한 번 맞닥뜨린 소름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오늘밤을 기다려야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