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었다. 아프리카 오지투어를 하면서 생생한 기록물이 방영되었다. 너무나 인상적인 것은 잠비아인지 케냐인지 아리송하지만 그곳의 어느 부족은 힘들게 사냥을 하지 않고 싱싱한 고기를 마음껏 포식한다는 점이다.
온기가 채 식지 않은 얼룩말에서 임팔라, 사슴, 누, 가젤 심지어는 코끼리 고기까지 맛보면서 향연을 즐기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팔다리가 길고 점프력까지 좋은 그들은 타악기 리듬은 생의 끝자락에서 담쟁이 넝쿨처럼 휘감겨 올라오는 흡입력과 압도력은 가히 말문을 막히게 할 뿐이었다. 그런 단결력으로 스크럼을 짜고 시시각각으로 전진해오는 공포는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백수의 왕 사자인들 버틸 수가 있었겠는가.
무리 생활을 하며 단결력이 응집된 협동심을 최대한 발휘하여 먹이사냥이 장관처럼 대초원에 펼쳐진다. 목표물이 정해졌을 때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서로 분담을 해가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먹이의 숨통을 끊어 강자임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부족들이 나설 때를 기다려 껑충껑충 뛰어 오르거나 고함을 지르면서 찌쟁찌쟁 타악기를 두들기며 기선제압으로 물러서기를 강요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었다. 자신들이 힘들게 잡아놓은 먹이를 결코 양보할 생각이 없는 사자들과 피라미드의 꼭짓점을 차지하는 인간들과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기 싸움이 불꽃을 튀며 대치상태에 돌입하였다. 그것은 배를 채우려는 욕심에 기반을 두었다면 문제가 다른 것이다.
한 번의 양보는 트라우마로 작용할 것이 뻔했다. 사자는 결코 하이에나가 아니었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사자이고 싶었다. 인간들도 정신을 교란시키는 온갖 작태를 총동원하고 있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신경을 긁어내는 광란의 춤사위에 느리게 눈치는 보고 있지만 사자의 체통은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위는 내장이었다. 선혈범벅이 된 뱃속으로 대가리를 집어넣고 연한 부위를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서열대로 대가리를 집어넣고 어느 정도 배를 채웠다 싶으면, 양보해 준다는 분명한 걸음으로 느릿느릿 물러서 주었다. 차례를 기다리던 하이에나나 들개는 인간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만의 눈싸움이었다. 두려운 기색 없이 서슬퍼른 눈빛이야 말로 진정한 우위를 점령하는 자격요건이었다.
문득 사자를 쫒는 인간들의 눈빛은 푸른 광채가 뚝뚝 떨어지도록 독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먼저 두려움을 없앨 필요성을 느꼈다. 검정과 노랑 도사견과 맞설 수 있는 용기는 손에 쥔 곡괭이가 아니라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독기로 무장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은영이에게 까지 주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선두에 나서서 그들에게 당당함을 보이는 것도, 으름장 같은 고함을 지르는 것도 내 몫이 분명했다. 내 꽁무니에 숨어서 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당부는 빼먹지 않았다. 헤드랜턴의 전등을 밝혔다. 어둠속에서 강한 불빛의 힘이 얼마나 크고 센지 그들이 읽어달라는 바람은 있었다.
나란히 다가서서 전진하는 은영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어둠속에서 전등 하나로 쏘는 모습이 외눈박이 괴물로 혹시 그들에게 비쳐지고 싶었다. 수풀더미에서 쿨렁거리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절대 물러서지 말고 당당하자.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