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공기 나누는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눔을 앞서 행하는 불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반갑고 고마운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불자님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코로나19도 극복할 수 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님들의 좋은 생각이 널리 퍼져서 더 좋은 인연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님께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쁜 세상에 있으면서도 행동을 근신하고, 착한 일을 행하는 이는 깨끗한 세계에 태어나서 많은 복락을 받게 된다.”
즉, 지금 세상이 아무리 어려움에 처해 있고 사회적으로 고통스러운 세상일지라도 내 자신의 행동을 바로 하고 착한 일을 힘써 행하면 이 사회도 맑아질 뿐만 아니라 다음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많은 복락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게으르며 행실을 조심하지 않고, 직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나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할만큼 가족간의 예의가 없는 상태에서 경제와 정치까지 불안하게 되면 더더욱 가족들끼리도 날카로와집니다.
본래는 힘들고 어려운 상태일수록 가족들이 단합하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족을 굶주리게 하고, 부모님께 불효·불공한 말로 대답하여 원수같이 반항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것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금전에 곤란을 당하게 되면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의 향락에 소비하며, 주색에 빠져서 호의호식으로 방탕한 생활만을 하면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할 줄 모르니, 예의와 의리도 모르고, 남이 잘하는 것을 시기하며 교만한 마음이 산보다 높아서 열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실정에 너무나 잘 맞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친척 권속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아는 체도 아니하고, 부모와 스승의 은혜는 꿈에도 생각지 않으며, 지은 업대로 과보를 받는 것은 조금도 믿지 않고, 올바르게 수행하는 부모형제까지도 살해하려 하는 이는 친척들 조차도 그가 어서 죽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남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공덕이 얼마나 수승한 공덕인가를 잘 아는 사람은 친척·권속이 헐벗음과 굶주림에 있을 때 복을 지을 것입니다. 또한 이웃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어도 못본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서로서로 화합하여 하루 동안이라도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극락세계에서 백 년 동안 선한 일을 닦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극락세계에는 선한 일뿐이고 나쁜 일은 조금도 없으므로 이 사바세계에서 열흘동안 선한 일을 행한다면 부처님 정토에서 천 년 동안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절에 와서는 선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질서도 지키면서 절밖에 나가는 순간부터 다시 탁한 마음, 이기적인 마음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에 오기 전에도 매일 선한 일에 해야 하며, 절에게 기도를 올리고 난 후에는 더더욱 좋은 일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험한 세상을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인연입니다. 좋은 인연을 심고 좋은 인연을 가꿔가는 그것이 바로 극락을 향한 길이요, 보살행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불우한 이웃과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나누고, 가족, 일가친척뿐만 아니라 사회나 직장에서 좋은 인연을 지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시기보다도 인색한 마음으로 아끼기 보다는 근면하게 절약하며 살아가되, 어렵고 불쌍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공덕이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적인 시련을 빨리 극복할 수 있으며, 사람의 인심이 흉흉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심이 흉흉해질수록 푹력과 사기와 절도, 살인과 같은 사회악이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김장을 담구면서 정을 나누고 따뜻한 밥을 나누어 먹으면서 정을 쌓아갈 때 경제가 어렵다 하더라도 사회는 더 이상 험하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뜻한 인심으로 좋은 인연을 심고 험한 세상을 다독이며 살아갑시다.
코로나19는 다시 복을 쌓는 준비기
온갖 고생해서 이제는 살만해진 세상이 된 줄 알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60년대 보릿고개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 시절의 고통을 모르고 있어서 과연 코로나19를 극복할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시 경제위기에 놓이고 보니 이제야 자식을 너무나 나약하게 키웠구나 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70년대 이전에 우리나라의 모습은 비참했습니다. 일년에 한 번씩 보리고개를 겪어야 했고, 물자가 부족해 양말을 기워신고, 옷은 기워서 형제들이 계속 이어 받아 입었으며, 신문지나 헌 잡지책으로 휴지를 사용했고, 하루에 연탄 한 두장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들이 거리를 방황하는 것은 예사였고, 하루에 한 두끼는 죽으로 연명하는 가족들이 많았던 것이 50~60년대의 현실이었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업화 바람으로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월남전에 의해 경기가 호전되고, 중동건설 붐으로 실업자 수가 급격히 줄었으며, 수출도 늘어 근로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기업가들은 투자와 수출에 힘을 기울였고, 소비자들은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해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세계인들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했으며, 70년대에 우리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새마을 운동은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 연구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난 우리 국민들이 정신적·문화적·종교적 양식을 받아들이는데는 여전히 빈곤한 형편이었습니다. 향락적인 문화는 발전하였지만 도덕성과 윤리가 근본이 되는 인간관계는 무너지고 황금만능주의로 인한 여러 가지 병폐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정신문화가 뒤따르기도 전에 개방화 물결에 휩쓸린 우리 국민들은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외제에 무분별하게 빠져들게 되었고 기업도 제품 개발은 뒤로 하고 수입에만 앞장 서 과소비를 부추겼습니다.
그로인하여 어린 아이들이 거리를 다닐 수 없고, 학생들을 학교와 독서실에서 마중해야 할 만큼 세상이 험하게 되었으며, 농촌도 땅 투기와 유락시설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이 바로 현실에서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