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우리는 여전히 이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새벽녘에 치른 대대적인 전투로 거저 눈만 껌뻑였다. 다시 그 순간을 맞닥뜨린다면 두말없이 기권을 하거나 패배를 인정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그만큼 섬뜩하게 느껴졌다. 열 번도 더 비누칠로 씻어낸 얼굴에서 도사견의 침이 끈적끈적하게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은영이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용케도 이겨낸 내 어깨를 다독였다.
바닥을 긁고 온 듯한, 거센 바닷바람이 아침부터 온통 몰아치고 있었다. 해상 기후변화는 참으로 다양하여, 맑다 싶으면 후두둑 빗줄기를 때렸다. 새벽까지 낌새도 없던 바람이 저토록 세게 덮치는 이유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해상의 온도에 의해 수시로 변화를 가져온다고 그러려니 했다. 마치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지녀온 폭넓은 이해와 관심을 보이는 내가 약간은 겸연쩍게 느껴졌다.
컨테이너 철골 이음새에서 삑삑 소리가 날 정도의 바람이었다. 몸을 반쯤 일으켜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낮고 바다는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침엽수가 웃자란 능선에서 나뭇가지들이 몸부림 치고 있었다.
거기, 분명하게 중심을 잡고 컨테이너 쪽을 노려보는 노랑 도사견이 포착되었다. 서릿발 같은 독기가 여기까지 전달되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은영이를 일으켰다.
“저놈이 저기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요.”
내 손끝이 지목한 곳에 노랑이를 본 은영이가 더 화들짝 놀랐다.
“쟤는 도대체 뭘 먹고 저렇게 기세등등하죠?”
“갯벌에서 낙지며, 게며, 물고기로 끼니를 때우는 것 같은데요.”
“허긴 어딘가에서 먹거리가 보장되니까 허락 없이 탐나국에 눌러 앉을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우리도 내쫒을 대책을 세워야겠어요. 일단 배부터 채웁시다.”
은영이가 일어나 냄비에 물을 올려놓았다. 숭덩숭덩 썰은 돼지고기에 신김치를 넣은 김치찌개를 할 모양이었다. 하긴 허기지면 의욕상실에 두려움도 배가 된다고 하지 않았나.
김치찌개를 먹는다는 생각만으로 기운을 얻어 창밖을 보았을 때 누렁이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일전을 서로 각오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몸이 망신창이가 되더라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최후를 지켜볼 것이라 다짐을 했다. 검정 도사견의 사체도 궁금했지만 쉽사리 문을 열고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어디에서 선제공격이 날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발톱에 찢겨진 가슴팍이 옷깃에 스치자 쓰리고 아려왔다. 스쿼트 운동으로 몸을 단련 시켜주었다.
김치찌개 앞에서 은영이가 박수를 쳤다. 박수를 받을 만한 운동 자세는 아니지만 왠지 뿌듯했다. 순번을 기다리는 검투사처럼 내 눈빛은 빛났다. 그 눈빛으로 거울 앞에 섰다. 아직은 쓸 만한 어깨와 팔뚝을 가지고 있었다. 탐나국을 지키는 경비원이고 은영이를 지키는 경호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했다.
김치찌개 앞에서도 추호의 물러섬 없이 허겁지겁 뱃속을 채웠다. 마님이 몰래 차려준 고봉밥을 쑤셔 넣는 머슴처럼, 대감의 출타에 맞춰 밥값만큼 힘을 쓰고 싶었다. 은영이는 자신의 밥을 한 숟가락 주면 정이 없다며 두 숟가락을 얹어 주었다.
살아오면서 이토록 존재감이 새롭게 평가 받은 적이 있을까. 식사 후에 망치를 쥐고 탐나국을 순찰할 계획이다. 이미 맞닥뜨릴 싸움은 예견되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