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侍者) (1) -단지 만인은 만물에 속한 부속(附屬)으로 칭해도 좋을 터. 무량무변의 가을 햇살이 흠뻑 등줄기를 적시던 정오, 지족선사와 시자가 바깥채를 거닐었다. 마지막 비행을 마친 하루살이 떼가 자신들의 긴 여정을 접고 있었다. “타심(他心)아, 호리병 속에 새를 놓아주었더냐? 병 속의 새는 모두의 화두이고 공공의 적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머리를 모을 것이다. 그만큼 촉박하다.” “새는 윤회가 없는 응보(應報)로 남는 것입니까?” “아니다. 한 번 호리병 속에서 화두가 된 새만 해당된다.” “큰스님, 저는 호리병을 깨뜨리겠습니다.” “단순한 것, 새의 상처와 유혈은 어찌 감당하겠느냐?” “저도 사라지는 것입니까?” “네 행동에 달렸다. 스며든다면 무릇 소생할 것이고 사라진다면 다시 억겁의 시간 안에서 티끌이 될 것이다. 더 정진해라. 알아듣겠느냐?” 적삼 아랫단이 흙벽에 쓸렸다. 가까스로 동작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차작거린 소리가 아래로 흩어지길 기다리며 마루에 박힌 옹이에 눈길이 멎었다. 옹이에서 부터 다섯 걸음을 옮기면 여닫이문이 나왔다. 문손잡이로 향하는 다섯 걸음은 응당 까치발로 다가갔다. 생명을 끊어내는 한 음(音)이 소리로 만들어지면서 매듭진 나뭇가지로 부터 떨어져 나온 낙엽은 추락을 예고했다. 허공에 뜬 낙엽도 타심에게는 소란스럽다고 느껴졌다. 흙으로 돌아가는 몸짓은 절박한 형태로 비집고 그들만의 자리를 형성했다. 구월로 젖어들고 있었다. 거기 바람이 조용히 가세하였다. 참으로 가난한 바람일지라도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지고 만 낙엽이 가고자 하는 흙이 될 때까지 바람은 끊임없이 어르고 달래주었다. 타심의 어린 눈에도 계절의 변화에 따른 묵은 세월과 낯선 세월이 말없이 포개어 지는 것을 감지하였다. 손에 든 놋그릇 자리끼가 찰방 거렸다. 노을은 천마산에 얹혀 있었다. 밤벌레가 자신의 영역 위로 뛰어 올랐다. 산새가 둥지에서 날개를 접었다. 타심은 지족선사가 수행을 하는 산신각 문고리를 잡았다. 찬 기운이 손끝으로 훅 들어왔다. 가만히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문이 열리자 둘로 나뉘어져 있던 공간이 하나로 합쳐졌다. 여전히 가부좌를 튼 선사의 서릿발이 등에서도 느껴졌다. ‘큰스님!’ 자음과 모음이 마음에서 스스로 만들어져 목젖에 걸렸다. 골격이 갖춰진 침묵의 벽면 수행은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타심은 관절에 온 힘을 지탱하면서 아랫목에 자리끼를 두었다. 한 치의 소리도 두텁게 차단하고 싶었다. 어느새 감지한 선사가 여전히 시선은 벽에 두고 타심의 목덜미를 잡았다. “해가 넘어갔느냐?” “올빼미가 날았습니다.” “이 검은 시각에 왠지 산천초목이 운다. 방문객이 있을지 모르니 개똥벌레 등(燈)을 내걸어라.” 왠지 타심은 호젓한 걸음으로 산신각을 나왔다. 밖은 어느새 어둠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어둠이 깊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코  끝에 닿았다. 가을이 맺히는지 지고 있는지, 천마산은 여전히 완강하게 계절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궁색하게 대나무로 엮어 문풍지를 덧붙인 등(燈)손잡이를 쥐고 댓돌위에서 미투리를 신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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