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侍者) (2)
저자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지족선사가 시주로 얻어온 미투리는 밤이슬 차단용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가녀린 풀잎 사이에서 소리죽인 밤벌레가 울었다.
몇 마리 개똥벌레가 날아다녔다. ‘좋다’ 이럴 때 마다 타심이 내뱉는 탄성이었다. 어깨춤도 곁들였다. 밤이 낮보다 입맛에 늘 순한 맛으로 다가왔다.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으로 몸을 비트는 풀잎 끝에, 비상(飛翔)의 첫 단계로 부지런한 개똥벌레가 모여들었다. 채 발광하지 않은 옅은 불빛들이 두런두런 거렸다. 타심의 손 그물에 잡힌 개똥벌레가 하나, 둘, 등(燈)을 채웠다.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푸석해진 잿더미를 쑤시면 퍼져나가는 불씨처럼 갇힌 등 안에서 개똥벌레 무리들이 문풍지에 매달렸다. 분명히 밝아지고 어두워졌다. 긴 여운이 솔깃했다.
가까이에서 주을 수 있는 빛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멀리에서 식별이 가능한 밝음이었다. 대나무를 세워 억새풀을 묶어 고정했다. 그래서 어둠속에 묻힌 청량봉 지족암이 야광체로 거듭나고 있었다.
가을로 옮겨가는 밤바람은 몸을 웅크리게 하였다. 달이 돌절구처럼 둥글었다. 타심은 털레털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야심한 밤에 누가 온다고 저러실까?’ 너럭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수 년 사이에 무릎에서 접혀지는 다리길이가, 어느새 가부좌의 골격을 갖추도록 자라있었다. 놀라운 변화를 엄숙하게 받아들였다. 두터운 어둠사이에서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라. 항상 열려있는 귀는 어둠이 깊어질수록 밝아졌다.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밤벌레의 날갯짓 소리와, 만개하려는 꽃의 미세한 떨림과, 속으로 새겨지는 소나무 둥근 테의 울음소리가 애달프게 여울이 지고 있었다.
타심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떨어졌다. 어둠에 얹힌 바람이 쉬 눈물자국을 말라붙게 했다. 아무 욕심도 없이 무소유로 살 운명이라면 그래도 욕심 두엇 정도는 남겨놓고 싶었다.
마음이 오목하게 모아지면서 차마 입을 다물게 하는 어둠 한 덩이와 넓고 평평한 여유를 담을 너럭바위면 족했다. 세상을 보는 빈자리가 눈에 부쩍 늘어날 때마다 옹골찬 오장육부를 소원했다. 깊은 뿌리가 세상의 평온을 읽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밤은 스스로 낮추라며 낮에 드러난 골이 메워지고 있었다. 군집한 나무 벽 사이에서 안개 냄새가 엷게 퍼졌다. 뱃속이 꼬르륵 거렸다. 이 또한 증진하지 못한 자신의 속을 따라와 웅크린 잡념이라 생각하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지금 깨어있는 자, 책임을 물을 것이다. 뿌리를 두고 나무들이 옮겨 다니는 시간에 진정으로 깨어있을 자격이 있는가. 미색의 고운 자태로 후리는 어둠의 속살에 몸을 맡기는 이 의식이, 영혼을 깨우는 출발점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타심은 얼마나 오래 너럭바위에 앉아 있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옅고 진하고 얕고 깊은 어둠이 몇 순배 다녀갔을 뿐이었다. 산속의 가을바람이 오지게 우우우 몰려 다녔다. 한기에 일어선 타심의 발걸음이 막 일주문을 통과할 때 목덜미를 잡은 목소리가 있었다.
“동자 스님, 동자 스님.”
찌쟁찌쟁 가슴의 문고리를 잡을 청아함이 담겨있었다. 서둘러 뒤를 돌아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