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侍者) (3)
개똥벌레 등(燈)을 내건 십여 보 거리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몸을 돌려 바라본 타심의 눈에 요동치는 한 여인은 동백 잎처럼 붉고 선명했다. 저토록 농익은 여인이 세상에 존재한다 말인가.
천지만물의 온갖 기운을 고스란히 담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달과 별과 이슬을 헤치고 삼경(三更)에 이른 저 자태는 정녕 무엇인가. 실재인가. 허구인가. 술수에 능한 구미호인가.
“동자스님, 황진이라 하옵니다.”
가슴에 돌절구로 덩더쿵 내리치는 ‘황진이’라는 이름의 울림이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저잣거리에서 엇비슷하게 사내처럼 생겼다하면 하나같이 황진이를 입에 올렸다.
발우(鉢盂)를 앞세워 탁발을 돌때마다 듣던 익숙한 이름을 천마산에 듣게 될 줄이야, 그것도 본인을 마주하고 서있는 타심에게 오죽하면 고결하고 숭고하게 미끄러지듯 빨려들어 왔겠는가.
한 목소리로 떠드는 명성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해졌다. 눈만 마주쳐도 기운이 빠지고 오금이 저린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타심은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치고 외쳤다.
“여기가 지족선사께서 머무르시는 지족암이 맞는지요?”
굳이 개똥벌레 등을 내걸지 않아도 될 뻔 했다. 온전히 내뿜는 여인의 미묘하고 개성적인 본질만으로 충분히 어둠을 밝힐 수 있다고 믿어졌다. 속세는 저 여인이 속한다는 것만으로 동경할 수밖에 없다고 느껴졌다.
강보에 싸여 버려진 업둥이로 지족암 귀퉁이에서, 지족선사의 눈에 띈 그때부터 생의 발판이 시작되었다. 탁발로 떠돈 속세가 전부인데 어찌 세상을 우렁찬 발걸음으로 옮길 수 있을까.
이미 한 쪽으로 기운 편협한 안목이 전부인데 말이다. 뭐라 칭한들 멈칫거릴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였다. 그러나 타심은 용기를 내었다.
간간히 찾아와서 반찬거리와 아궁이를 보살펴주는 보살에게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이 일지 않았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근본바탕의 기운에서 연유된다고 짐작했다.
“참으로 잘 찾아오셨습니다.”
문득 합장을 하면서 어투와 몸짓이 지족선사의 모습에 근접해있는 자신이 조금은 대견했다. 아울러 저 여인에게 만이라도 동자스님을 뺀 스님으로 호칭 받고 싶었다. 그즈음 타심은 변성기를 겪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 때나, 나뭇짐을 옮길 때나 종종 뻗치는 기운을 감지하였다. 해우소에서 아래로 보지 말라는 주의를 어기고 힘을 준 오줌줄기를 바라볼 때면 거기, 샅에서 거뭇거뭇한 털이 보이곤 했다. 그러면 고개를 젖히고 늑대처럼 포효하고 싶었다.
“이 야심한 밤에 누군가 찾을 거라며 큰스님께서 등을 내걸어라 하셨습니다.”
“역시 영험하며 혜안이 깊으시다는 소문이, 소문만이 아니었군요.”
여인은 가지런한 이를 하얗게 드러내고 웃었다. 타심의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아랫도리가 괜히 묵직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삼라만상에 오직 저 여인과 타심만이 존재한다고 강하게 몰입되었다. 그렇게 자기최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었다. 가까이 다가온 여인의 분향이 남루한 승복 사이로 파고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