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도시나 농촌이나 모두가 어려움을 이겨 나가려면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마음과 실행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백50만원을 주고 산 송아지를 1년 반 동안 근 1백만 원 어치의 사료를 먹이고 키웠는데 사료값이 너무 올라 더 키우지도 못하고, 아이들 학비를 대야 하므로 2백만 원에 팔아야 하는 실정이 지금의 농촌실정입니다.
거기다가 잘 알고 있다시피 농민들은 일 년 동안 피땀으로 지은 쌀농사로 자식들 학비도 대지 못하는 지경입니다.
예전에 우루과이라운드라 해서 쌀시장개방 문제로 온 나라가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세계가 모두 자유무역 체제가 유지되어야 살아갈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만 쌀시장개방을 반대할 수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연구가 나온 바가 있었는데 서강대학교 이상우 교수는 우리 국민이 우리 쌀과 외국 쌀을 구별하여 우리 쌀을 비싸게 사주는 방법을 제시한 바 있었습니다. 즉 소비자단체와 쌀 생산단체가 협약을 맺어 농민이 생산하는 것을 모두 사주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미 이런 방식으로 많은 쌀재배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켜 준 바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통해 농촌이 다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국민모두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제시되었습니다.
3% 쌀시장을 개방하면 연간 농민이 피해를 보는 금액은 1조원쯤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1천만 명의 국민이 매달 1만원만 더 부담하면 농민의 피해를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죠. 이것이 고통분담이 아니겠냐는 것이 이상우 교수의 의견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실직한 사람, 손해보고 일하는 농촌사람들을 위해 온 국민이 고통분담을 해야 합니다. 고통분담은 누구에게 떠맡겨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그 고통분담에 앞장서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아마, 불자 가운데서도 이번에 금모으기운동, 달러모으기운동에 동참하신분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절실한 마음이 모아지고 있는 반면에 아직도 금덩어리를 내놓기는커녕 더 금덩어리를 사모으고, 달러를 장롱 속에 숨겨 놓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료값, 기름값이 치솟자 사재기 해놓고 농민들과 서민들을 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지금 사회는 범죄로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보면 칼 들고 남을 해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은 나만 잘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다함께 망하고 죽게 됩니다. 내가 조금 더 남을 생각하고,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과 실천이 있어야 범죄행위도 줄고 어려운 경제난국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쌀독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쌀독이 비면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비어 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나눌 것이 있을 때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없는 사람이 인색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쌓아 놓고도 인색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심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달린 것이지 쌀독만 운운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중국 제나라에 중대부 이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대궐에서 왕을 모시고 술을 마시다가 그만 술이 너무 취해 그 도를 넘고 말았습니다. 취중에 하직인사를 하고 나온 이사는 누각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정신을 차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누각 밑에 있던 문지기가 이사를 보고 애걸했습니다.
“나리. 남은 술이 있으면 좀 주십시오. 저도 속이 출출합니다.”
그러나 이사가 벌컥 화를 냈습니다.
“닥쳐라 이놈. 네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웬 헛소리냐?”
이에 심사가 뒤틀린 문지기는 더러운 물을 한 바가지 떠다가 대궐 기둥에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누가 보아도 소변을 본 자국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왕이 그곳을 지나다가 기둥의 흔적을 보고 크게 화를 냈습니다.
“대체 어떤 놈이 대궐 기둥에다가 일을 보았느냐?”
그때 간밤에 그곳에 있던 문지기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전하. 누가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밤에 이사 중대부가 그곳을 지나는 것을 보기는 했습니다.”
“아니. 이놈이 내가 좀 신임해 주었다고 해서 이렇듯 방자하다…. 여봐라. 당장 이사를 잡아들여라.”
왕은 크게 화를 내며 이사의 벼슬을 빼앗고 중벌을 주었습니다.
이사는 목마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은 자신의 인색함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형편이 서로가 인색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을 위하는 마음의 배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혹시 프랑스 화가 밀레가 그린 그림인데 ‘만종’이라는 그림을 아십니까? 해질녘 즈음에 농부가 수확을 마치고 어스름 속에서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장면의 그림입니다.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그림을 보면 가난해 보이지만 두 부부가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평화스러워 보입니다.
그 그림을 그린 밀레는 지금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가지만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눈여겨보았던 사람은 미술평론가가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사상가 루소였다고 합니다.
루소는 밀레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가난에 허덕이던 밀레에게 어느날 루소가 찾아왔습니다.
“여보게.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
밀레는 친구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밀레는 작품을 팔아본 적이 별로 없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밀레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화랑에 자네의 그림을 소개했더니 적극적으로 구입하겠다고 말하더군. 이렇게 선금까지 주면서 자네의 그림을 구해달라고 하더라니까.”
루소는 밀레에게 돈을 주고는 그림을 갖고 갔습니다. 입에 풀칠하기가 막막했던 밀레에게 그 돈은 생명줄이었습니다.
또 자신의 그림을 인정받았다는 것에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밀레는 생활에 안정을 찾고 더욱 열심히 그림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