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侍者) (7) 지족선사의 눈에 한사람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숨 가쁜 호흡이 밀려왔고 누군가 예기치 않는 등불의 심지를 밝혀주고 있다고 가슴으로 말하고 있었다. “물건이다!” 지족선사는 황진이를 보며 한마디로 정의했다. 눈, 코, 입이 정확히 제자리에서 제 구실을 하는 여인의 자태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적이 있는가.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빤히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그래도 벽면수행으로 탐욕을 끊어내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에게 이렇게 철저히 속고 살았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황진이는 마음껏 감상하라는 자신감에 찬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스로 쾌락추구의 욕망을 끊어내었다고 자신했는데 여지없이 바닥을 보이는 이제껏 정진(精進)은 또 뭐란 말인가. 지푸라기 같은 검불 같은 이 사사로운 황당함은 어찌 받아들일까. 채워도 채워도 허기진 욕정이라는 사실에 반기를 들고 싶었던 서슬 퍼런 기세는 어디에 있는가. 참담해지는 자신을 달래려고 아기 창으로 눈길을 던졌다. 달빛이 고여 들고 부서지고 있었다. 늑대 울음소리도 포박되었고 풀벌레와 올빼미 울음소리도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마냥 퍼덕거렸다. 황진이의 숨소리도 들렸다. 황진이의 살 냄새도 황진이의 미세한 움직임도 멈출 줄 모르고 지족선사의 촉각을 건드리고 있었다. “선사님,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줄 알고 계시는지요?” 미처 대답할 사이 없이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 세상에서 가장 굳건하고 튼튼한 한 남성을 무너뜨리려고 이 야밤을 벗 삼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헉’ 목젖에 걸린 지족선사의 신음이었다. “저자거리에서 파다한 소문에 의하면, 이무기에서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 벽면수행에 들어간 선사님을 유혹하면 목석같은 남정네의 전부를 엉덩이로 깔아뭉갠 성취감에 사로잡힌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이 말 동의하시는지요?” 지족선사의 시선은 아기 창에 꽂아두었지만 황진의 말소리는 무너진 둑방처럼 콸콸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세상은 참으로 험난하구나. 세상은 참으로 오묘하구나. 이토록 풀어야할 병속의 화두는 곳곳에서 자신을 시험하려 드는구나. “진정 네가 대답을 기다리는 게냐?” “그렇습니다.” 거두었던 시선을 다시 황진이에게로 옮겨왔다. “얼마나 많은 남정네가 너의 말 한마디에 굴복했느냐?” “단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 남정네에게 헤프게 몸과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집 한 채에 해당한 재물을 들고 와도 꼿꼿하게 버틴 절개는 지금도 부끄럼이 없습니다. 다만 세상에서 난공불락이라고 칭하는 태산 같은 남정네에게 제 마음이 동하여 한 걸음에 달려왔을 뿐, 혹여 그런 류의 황진이로 생각하신다면 저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천마산 지족암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도 아니고, 두둑하게 호의호식을 보장할 재물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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