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侍者) (8)
“그렇다면 내가 너를 취할 것 같으냐?”
“반반이라고 봅니다. 제가 선사님을 향해 마음을 펼치면 쉽게 제 품속으로 빨려 들어올 것이고, 혹여 제 마음을 접어면 여느 사내들과 달리 입맛만 다시며 놓아줄 것입니다. 낚시찌가 무수히 들락날락 하는데도 말입니다.”
지족선사가 이 자리를 수습하기 위해 너털웃음으로 방어막을 쳤다. 공허한 너털웃음이 끝나고 자세를 가다듬은 지족선사의 표정은 비장했다.
“요물이로다. 참으로 요물이로다. 난 너와 같은 세상에 머물러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다. 허나 나는 속세를 떠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한 불자니라. 어떤 유혹에도 결코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엄숙한 약속이자 숙명이다. 이 세상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하고자 밤낮으로 정진하는 하나의 면벽수행이 보이지 않느냐?”
황진이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것이 지족선사가 꼭꼭 싸매고 싶었던 노른자 본심이 노출되었다는 무안함에 괜히 헛기침을 하였다. 문설주에 기대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던 타심이 놀라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눈꺼풀에는 잠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큰스님 부르셨습니까?”
난감한 이 상황을 타개할 묘수를 찾던 지족선사가 필요이상의 큰소리로 선방 밖을 향해 소리쳤다.
“타심아! 산 밑까지 보살님을 모셔드려라. 밤눈 밝은 산짐승들이 해할지 모른다.”
“선사님을 향해 천마산을 오를 때 선사님의 보이지 않는 기운이 저를 지켜준다고 믿었습니다.”
이번에는 타심의 목소리가 묻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황진이가 맞받았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보름 후에 다시 지족암을 찾겠습니다. 입구에 자리한 우뚝 바위처럼 여전히 꿈적도 하지 않는다면 어설픈 여인의 헛된 꿈으로 접어두겠습니다.”
“황진이라 하였느냐? 약간의 모자람도 소홀함도 없는 천하미색이다. 지금의 내 단호함이 전부일지 모르지만 내 동요는 어쩔 수 없다. 나도 한갓 인간이면서 보잘 것 없는 미물이기에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단전에 온 힘을 모으지만, 뱃속은 강가를 집어삼키는 황톳물이 되었다. 용서하라. 내 몰골이 이토록 버둥거리는데도 네가 걱정이 된다. 무사히 산 밑만이라도 잘 내려갔다는 안부를 듣고 싶어서 그런 게다. 밖에 있는 시자를 대동해라. 똘똘하고 강건하여 너를 지켜줄 것이다.”
황진이가 일어나서 다소곳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수더분한 새벽햇살이 아기 창을 향해 스며들듯 들어오고 있었다.
밤을 도운 새벽이 무성한데
새벽바람은 어찌 차지 않을까
처마 밑 낙숫물은 마른 울음을 울고
잎 새는 달빛 속에서 몸집을 키우자
섬돌에 꽃신은 주인을 알아본다
타심은 선방 문이 열리고 뒤꿈치를 든 사뿐한 황진이와 눈이 마주치면서 허리를 숙였다. 졸린 눈은 온데간데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