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侍者) (10) 일순 타심은 황진이를 향해 보호막을 치듯, 넓게 팔을 벌려 경계선을 그어 주었다. 접근금지를 알려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러나 도적들의 눈에 타심의 행동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네 명의 도적들의 동공은 하나같이 확장되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도적도 있었다. “이게 누구신가? 천하의 황진이가 아니신가? 이렇게 이른 시각에 어인일로? 오호라, 새벽불공을 다녀오시는 게로구나. 횡재로다. 한마디로 땡이로다. 또한 심봤다 일세.” 춤이라도 출 어깨 짓을 씰룩 거리면서 누런 이빨을 드러낸 도적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타심은 순간 황진이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청초한 자태를 여과 없이 드러낸 여인이 서있었다. 결코 두려움이나 절박감은 절대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의 수행을 부수고, 불심의 심지를 꺾은 황진이는 당연히 저 모습이어야 했다. 흔들림 없는 당찬 모습 그대로이기에 지금 나락으로 떨어져도 후회 없을 선택이라고 타심은 생각되어졌다. “도적님들,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계실 터인데, 어찌 가는 길을 막고 이러십니까?” 숫자로, 덩치로, 연륜으로 우격다짐하려던 도적 넷을 가로막은 것은 파릇파릇한 동자승이었다. 예기치 않는 제지에 약간은 주춤거렸지만 이내 반격의 자세로 돌입했다. “어라, 이놈 보게. 네가 지족암 시자구나. 갓난쟁이로 버려졌다는 소문이 엊그제인데 어느새 자라 우리 앞길에 장애가 되다니, 불쌍한 네 인생을 봐서 웬만하면 완력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분명 네가 좌초한 일이렷다!” 한꺼번에 우루루 달려들 기세로 씩씩거리는 도적들을 보며 황진이가 나섰다. “돈이 필요하다면 말씀을 하시게.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거로 봐선 내 집도 분명 알고 있을게 아닌가. 약조하겠네. 집으로 찾아오면 놓아준 대가로 이백 냥은 두말없이 건넬 것이니, 어찌 동자스님 계신데 내가 두말을 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돈이 아닌 몸이라고 말하면 그것도 들어줄 건가? 이거 쫀쫀하게 쬐는 맛이 있네. 그렇지 않는가? 하하하.” 옆에 있는 패거리에게 동의를 구하듯 어깨를 툭 치면서 파안대소를 했다. “내 몸에 털끝이라도 닿으면 나는 스스로 자결할 것이다.” 황진이는 은장도를 꺼내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작고 뾰족한 은장도 날 끝이 아침 햇살에 푸르게 살아났다. “무슨 여염집 규수도 아니고 기생주제에 절개가 웬 말인가? 어디 정말 그렇게 하나 한번 봐야겠다.” 옆에 있던 패거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읽었는지 은근히 말리기 시작했다. “형님, 이백 냥도 적지 않는 돈인데 그만 보내줍시다.” 그러나 앞장서던 도적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기어코 황진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타심은 선무도의 자세로 도적의 걸음을 세웠다. “큰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절에서 무도는 싸움이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수행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직은 미숙할지 모르나 제가 알고 있는 몇 수로 참회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옵니다. 깨달은 도적님들은 열외하시기 바랍니다. 아픈 만큼 깨달음이 클 줄 아옵나이다. 용서하소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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