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을 따라가면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탁발승으로 저잣거리를 찾은 타심의 눈에도 생명의 기운이 엄습해 왔다. 어쩌면 탁발을 나설 때부터 왠지 주눅 든 마음이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지족선사와 탁발을 나선적은 몇 번 있었지만 혼자 천마산을 내려와 탁발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수련의 연장선상에서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의식과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미천한 삶의 방식인 탁발을 하는 것도 바른 목적의 실현과 괴로움을 끝내려는 뜻이 담겨있다고 했다. 흔쾌히 지족선사는 바랑을 어깨에 들쳐 메게 하였다. “해지기 전에 다녀오너라. 곳간에 곡식이 넘쳐나도 수도승의 기본은 탁발에 있는니라. 중생을 구제한다는 확고한 중심은 자신의 몸이 그만큼 고달프고 힘들어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너만의 석가세존을 모시려면 선대의 고행도 밟아 본 뒤 설법을 전파해라.”
등 떠밀리듯 나선 탁발의 길에서 약간의 투덜거림도 없지 않았다. 괜한 돌부리를 걷어찼다가 미투리 끝이 불퉁해졌다. 숲길을 벗어났고 시냇물을 건넜다. 마을 입구에 펼쳐진 들녘에 멈췄다. 낮에 뛰어오르고 목청껏 우는 풀벌레 소리에 멈춘 듯 했지만 그것은 뒷전이었다. 품앗이로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된 모내기 현장을 목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란...참...”자신의 마음속에 이런 말을 준비하고 있는 줄 정말 모르고 있었다. 결코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냄새에 부러움을 곁들이고 있었다. 부지불식간 튀어나온 말에서 농부들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들과 뒤죽박죽으로 살아온 정겨움이 제 몸속 깊숙이 떨림으로 나타났다. 물 댄 논에 일렬로 늘어서서 모를 심는 사람들의 정돈된 박자는 가히 수준급이었다.
심어놓은 모의 줄 사이와 포기 사이의 간격은, 비껴가지 않는 묘한 전율이 있었다. 타심은 넋을 놓고 그 장면에 빠져들어 갔다. 밀착되지 않고 가지런한 간격으로 인해 한 톨의 곡식이 통풍과 채광을 고루 갖춘 최적의 생명력으로 튼실하게 자라는 염원도 느껴졌다.
“스님, 동자스님도 한번 해보시죠.”
논둑에서 멀찍이 참관하던 노인이 타심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미 한세상을 넘기고 뒷정리를 하는 느릿한 걸음의 노인은 타심에게 동참의사를 넌지시 물어왔다. 손사래를 치며 조금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어서 방해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해보시라는 겁니다. 보아하니 탁발하러 오신 것 같은데 저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귀한 공양의 중요성도 깨우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인의 단호함에 타심은 미투리와 바랑을 벗고 종아리를 걷었다. 멀고 먼 뒤에서 다가와 속세의 매듭이 한 겹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논으로 들어간 타심을 향해 사람들은 하나같이 환호하며,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흙탕물도 튀였고 팔다리도 저려왔고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하나의 세상 사람처럼 그들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