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바닥에서도 보시(布施)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자스님.” 굽힌 허리를 펼 새도 없이 모를 심는 손길을 따라가지 못해 허둥대다가, 타심은 겸연쩍게 웃으며 논둑으로 나왔다. 농부들은 빈자리를 메꾸며 간격을 넓게 벌렸다. 익숙한 부대낌이 왠지 고마웠다. 한낮의 햇살이 카랑카랑했다. 흙 범벅이 된 손등으로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닦아낸 얼굴에서 텁텁함이 한 겹 얹어진 느낌이었다. 차양막 그늘에 걸터앉은 노인이 타심의 종아리를 보며 한마디 건네왔다. 무심한 눈길로 종아리를 쳐다보았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근육질의 거머리 한 마리가 옹골차게 달라붙어 있었다. 산사에서 커온 타심은 열여섯 살이 될 동안 말로만 듣던 거머리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천천히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미끌미끌 거리는 거머리를 떼내었다. 호기심 어린 노인의 시선이 햇살만큼이나 따가웠다. 타심의 손가락에 잡힌 거머리는 홀쭉해지면서 버둥거렸다. 오물거리는 빨판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동물에 일시적으로 들러붙어 피를 빨아먹는데 곪은 상처에는 거머리가 최고지요. 자신의 덩치 열배정도의 피로 느끈히 배를 채울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한 대식가지요. 오늘 청정한 동자스님의 피 맛을 본 거머리는 얼마나 행복에 젖어들겠습니까.” 거머리를 떼 낸 종아리에서 골을 타고 조금씩 피가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약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물 만난 고기처럼 노인의 대화는 눈빛만으로 이어졌다. “거머리 몸속에 이상한 효력이 있는데 바로 피를 멈추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배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지요. 거머리가 떨어져 나갔으니 곧 피는 멈출 겁니다. 이제 동자스님의 앞길에 얼마나 많은 거머리들이 달라붙을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거머리 중에도 이롭게 하는 거머리와 해롭게 하는 거머리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등장할 겁니다. 판단은 오롯이 동자스님 몫입니다.” 타심은 논둑에 놓아준 거머리에게 눈길이 갔다. 모내기하는 논에 넣어주면 농부들이 해를 입을 것 같고 그대로 두면 말라 죽을 것 같은 기로에서 망설였다. “어쩌시겠습니까?” 노인은 차양막 그늘에서 벗어나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금도 스스로 판단을 해야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숨이 붙어 꼼지락 거리고 있는 저 생명을 외면하시겠습니까? 또 누군가의 종아리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주겠습니까?” 타심은 바랑을 어깨에 메며 모내기에 열중인 농부들의 힘찬 풍요를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손가락 마디만한 거머리가 덩치의 열배에 해당하는 피를 빤다고 해서 농부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허나 두고 가면 하나의 생명이 자신으로 인해 말라죽는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는가. 노인의 굽은 허리만큼 몸을 숙여 거머리를 쥐어들었다. 여전히 손가락 사이에서 생명이 느껴졌다. 논물로 가득한 논바닥에 거머리를 내려놓았다. 마치 새롭게 숨 쉬는 법을 배운 듯 거머리가 헤엄쳤다. 타심은 닫혀있었던 마음속 문이 열리는 기이함에 빠져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