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머리(3) 발걸음이 닿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앞을 열었다. 논두렁의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 등 뒤에 있는 노인의 차양막에 시선을 던졌다.  어느 해는 차양막 그늘 대신에 신명나게 못자리 모를 뽑아서 본답에 옮겨 심던 주체였을 것이다.  대열(隊列)을 목청껏 맞추며 전진한 열정이 그득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의 두께가 얹어졌을 때 이전에 누군가 그랬듯 차양목 그늘의 붙박이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야속한 세월 안에서 이제는 뒷자리 훈수가 제격이라고 깨달았을 것이다. 동적인 자리에서 정적인 자리로 물러앉은 노인은 비로소 삼라만상의 이치에 눈을 뜰 것이다.  다만 노인의 훈수에 귀를 열지 않는 무리들로 넘쳐나는 세상 속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노인도 한때의 젊음을 자랑할 때 귀담아 듣지 않은 행동으로 저 산천을 누볐을 것이다.   바람이다. 아득한 몸속의 바람이다. 언젠가 미투리 바닥이 닳아 길 끝에서 떨다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까무룩히 잦아지는지 챙길 것이다.  어쩌면 논둑을 에워싸는 잡초보다 못한 인생의 발걸음에 접어든 것은 아닌지 그런 방랑이, 그런 수도(修道)가 타심의 근육을 흔들어 놓았다. 물소리는 내내 따라왔다. 생각이 멈추자 물소리가 들렸다.  농로를 따라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도랑의 물살은 경이로운 생명을 소복이 담고 있었다.  송사리 떼였다.  매끈한 몸매와 지느러미로 물살의 반대방향을 향한 모습에서 처마 밑 풍경소리를 들었다.  푸른 멀미처럼 오장육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울림, 하나의 소리가 오독오독 꿈틀대는 송사리에게서 분명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자유가 다시없을 것이다. 그런 치열(熾烈)이 와 닿을 때 마다 절겅절겅 울어대는 풍경소리가 한구석 뒤엉킨 모습 그대로 드러나서 다가오고 있었다. 먼 곳을 돌아온 듯 늠름한 자태는 어이할거나.  분명 송사리의 하루는 맹렬하게 부대꼈을 것이다. 타심은 가만히 눈물이 고여 들었다. 송사리가 물의 반대방향으로 오를 때마다 환청처럼 들리는 풍경소리는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송사리 떼로 덤벼들자 도망칠 곳 없는 타심의 눈물이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나은가, 자네들이 나은가?” 큰스님의 근엄함을 흉내 내면서 바짝 고개를 숙여 다가갔다.  저잣거리에서 해지기전에 탁발을 마치고 돌아갈 타심의 열여섯 생애도 부대끼는 앞날이 예견되고도 남았다. 도랑 골에 두 다리를 벌려 허리를 숙인채로 동병상련의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능숙하게 물살과 어우러진 흐늘거림으로 송사리 떼에게 다가오는 생명체가 있었다.  좀 전에 자신의 종아리에 붙어있던 크기보다는 작았지만, 빨판을 앞세운 자태는 치명적이면서 공격적인 거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송사리 떼들은 오직 물살 거슬러 오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마리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빨판의 흡착은, 떼로 몰려다니기 때문에 순조로워 보였다. 위험 신호로 물장구도 생각했지만 큰스님의 말씀이 발목을 잡았다.   “삼라만상이란 온갖 사물들이 숲처럼 빼곡히 퍼져 있는 모습을 말한다.  산천초목은 당연히 삼라만상에 포함된다. 그런데 자연이라고 늘 한가롭고 여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있는 대로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행동에 섣불리 끼어들지 마라. 제 운명이고 제 몫이다. 알겠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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