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머리(4) 도랑은 좁고 순한 물살로 흐름을 만들어내지만 송사리 떼는 하나같이 미지(未知)의 모험이었다.  도랑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관과 방향성에 부합된 몸놀림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송사리 떼는 도랑의 시작점에 자신들이 가고자하는 목표가 기다린다고 다들 믿고 있었다. 그래야만 물살에 밀리거나, 기진맥진하더라도 곧 수습된 몸으로 상류를 향한 열정은 쉬 저버릴 수 없었으리라. 물살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맡기는 도전정신은 적어도 타심의 눈에 아름답게 비춰졌다.   아직 여물지 않은 자신의 팔뚝과 종아리를 쳐다보며 거친 세상을 오르려고 하는 생의 이면에 소름이 돋았다. ‘과연 낙오되지 않을까’ 지족암 우물가에 버려진 채로 자라 세상물정을 몰랐던 타심은 이미 불교에 귀의해 있었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세속을 등지고 모진 마음으로 찾아든 출가수행자들이 있는가 하면 염불을 자장가 삼아 젯밥으로 끼니를 연명한 벌거숭이 타심도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열정적인가 논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의 영향을 받으면서, 가고자하는 길에서 내려서지 않는다는 자기 확신이 선명한가에 달렸을 것이다.   저 거침없는 송사리 떼처럼 맹목적이면서 저돌적인 ‘돌격 앞으로’를 기치로 내건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설익은 타심의 눈에 비춰진 세상은 모두가 스승이었다. 들녘의 흙냄새를 내심 들이켰다.  바람과 풀잎과 햇살도 섞여 속을 채웠다. 비로소 삶에 눈을 뜬 자신이 대견했다. 멀어진 차양막 그늘이 너풀거렸다. 물살을 가로지르는 것은 송사리 떼만이 아니었다.  피 냄새를 맡은 거머리의 지그재그 몸놀림이 있었다. 아둔한 송사리에 비해 자신의 체형을 십분 활용한 거머리가 유언하게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빨판이 고개를 쳐들면서 제법 살이 오른 송사리의 몸통에 짜임새 있게 달라붙었다. 송사리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대열에서 빠져나와 옆으로 비실비실 몸을 눕히고 있었다.  몸속으로 달디 단 피가 전해지는지 거머리의 몸은 부풀어 올랐다. 하나의 생명은 하나의 생명을 위해 굴복하고 쟁취하였다.   “부처님의 뜻이었습니까?” 입안에서 만들어지는 모음과 자음을 조합하여 혀끝으로 굴러보았다. 해거름에 저잣거리를 다녀간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마음이 급해지진 않았다. 바랑 안에 발우가 덜거덕 거리며 등에 닿았다.  큰스님이 뭉퉁거린 탁발 속에 오묘한 자연의 이치도 담아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을 게다. 정오 햇살이 설핏 비켜가고 있었다.   “동자스님! 동자스님!” 멀리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타심이 고개를 젖혀 쳐다보았다. 차양목 속 노인이 크게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다.   “모내기 밥으로 보시하려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 진정성에 이끌려 타심은 걸음을 옮기면서 문득 거머리에게 눈길을 던졌다. 배불뚝이 거머리가 다녀간 송사리는 눈알을 뒤집고 도랑기슭에서 버려져 있었다.  거머리의 행방은 묘연했다. 은닉하기 좋은 곳에서 안락한 휴식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다시 허기지면 빨판을 앞세워 먹잇감을 찾아 나설 것이다.  불특정다수를 향한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머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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