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머리(5)
한상 차려진 모내기 밥이 차양막 그늘에 차려지자 흙탕물이 덕지덕지 묻은 고단한 몸을 접고 일꾼들이 빙 둘러앉았다.
타심이 비좁게 들어갈 공간은 있었다. 바랑에서 발우를 끄집어내어 음식을 나르는 아낙에게 건넸다.
“전 여기에 주시면 됩니다.” 아낙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잘 하고 계십니다. 제 밥그릇이 있어야 탁발의 기본이 갖춰지지요. 호호.”
노인과 일꾼들이 걸쭉하게 따라 웃었다. 괜히 귓불이 붉어진 타심은 까까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이 세속을 비켜간 순수성으로 읽혔든지 국을 나르든 아낙이 몸을 비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노란 털이 채 가시지 않은 병아리 같습니다요. 따뜻이 품어줘도 될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동자스님?”
또 다른 아낙의 농담에 총각김치를 한 볼떼기씩 입에 문 일꾼들은 흐흐흐 웃음을 입가에 흘렸다.
나물반찬에 강된장으로 쓱쓱 비빈 모내기 밥에 앞뒤 잴 것 없이 식욕이 동한 타심은 발우를 끌어안고 허겁지겁 입안으로 가져갔다. 어쩌면 무안해 할 농담을 흘리고 싶은 본능적 방어막 같았다.
말끔히 비운 발우에 숭늉을 채운다음 휘휘 돌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중천에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종달새가 가파른 날갯짓으로 산 그림자를 따라 날고 있었다.
발우에 담긴 숭늉마저 들이키며 타심이 일어섰다. 이미 노인과 일꾼과 아낙들은 흥미를 잃은 타심을 두고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일어선 타심에게 노곤하게 말을 던져왔다.
“가시렵니까? 오늘 모내기 밥으로 보시한 우리도 동자스님 장부책에 잘 간직하세요. 훗날 부처님 은덕으로 마부 딸린 말이라도 몰아볼 줄 누가 압니까.”
타심은 진정으로 허기를 들어준 비빔밥의 풍요만큼이나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아낙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길을 재촉하며 오월 향기를 가슴으로 들이켰다.
푸른 모판에서 기세등등한 생명력이 샘솟고 무작정 사람냄새가 좋았다. 도랑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곧 청각 속에 낙엽처럼 하염없이 쌓이고 있었다.
승복의 깔깔한 촉감과 자박자박 메아리치는 발자국 소리와 미투리 신발에 의지한 몸뚱이가 도랑 길을 타고 있었다.
어느 해에, 어느 시간에, 어느 장소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두렵다. 타심은 껑충껑충 이쪽 도랑둑에서 저쪽 도랑둑으로 스스로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그렇게 해도 어차피 도랑이 끝나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을 입구 당산나무는 언제나 우람했다. 널평상이 그 아래를 차지하고 있었다. 교태스러운 몸짓으로 한 여자가 앉아 타심에게 추파를 던졌다.
한눈에도 만삭의 몸이었다. 바쁜 농사철에 일손을 도울 몸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게슴츠레한 눈빛이며 쥐 잡아 먹은 화장기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손짓으로 타심을 부르고 있었다.
걸음을 멈춘 타심은 조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자랑스럽게 만삭의 배를 내밀었다.
“배불뚝이 내 배 예쁘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