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머리(8)대반이 뒤로 물러지고 정적이 흘렀다. 여자의 마음이 허락하기를,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타심은 두 남자를 쳐다보았다.  한 여자의 시간을 위해 그윽한 눈길을 감추지 않고 집중하는 남자들은 사뭇 뜨겁고 진지했다.  앞마당 복숭아 잎을 따와서 여자 곁에 두고 가슴에서 발원하는 나뭇잎 떨림의 소리를 담기위해 하나같이 귀를 열어두었다. 만삭의 몸을 뒤틀면서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여자의 얼굴이 또렷하고 맑아 보였다. 밖은 오월을 관통하는 독한 어둠이 뭉텅뭉텅 몰려다녔다. 여자가 이파리를 접어 양손 엄지와 검지에 끼어 입술로 가져갔다. 타심은 저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입술이 질식하도록 매력적이었다.  입술 너비만큼 벌린 양손의 거리가 앙 다문 입술처럼 팽팽하게 힘을 주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아랫입술에 댄 풀피리를 입술로 서서히 죄여들면서 윗입술을 살짝 떨어지게 한 뒤 바람을 불기 시작했다.  나직하고 세게 부는 조절은 곧 높고 낮은 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왜 이토록 등이 가렵고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드는지 타심은 알 것 같았다.   옭죄고 풀어주고 당겼다 놓았다, 그런 음들이 하나같이 들쑥날쑥 도드라지게 달려드는 이유가 풀피리를 잡은 강도와 입김의 세기가 빚어내는 혼신의 결과물이었다.  문득 타심은 여자의 입술에서 낮에 본 거머리 흡반을 떠올렸다. 송사리에 달라붙어 천연덕스럽게 피를 빠는 강력한 흡반이 타심의 눈에 여지없이 겹쳐져 왔다.  남자들은 여자의 풀피리 음에 맞춰 추임새를 넣거나 어깻짓으로 신명을 돋궈주고 있었다.   남자 하나가 방문을 열었다. 별빛의 세상을 취하고 싶은 행동처럼 보였다. 누가 뭐래도 이미 척박한 하늘에 별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기세등등하게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몰입이 팽배했다. 풀피리를 불고 있는 여자가 신들린 듯 자세를 꼿꼿하게 세워 품고 어르고 달랜 한 음, 한 음을 자신의 몸속에 자라는 생명에게 바치고 있었다.  저마다 남루한 처지가 잊혀졌다. 여자는 힘에 부친 듯 서서히 마무리 곡조를 타고 있었다.  이제껏 뱉어낸 수많은 음들을 뭉뚱그리고 추스려서 합일점으로 몰아붙였다. 타심의 이마에 밤벌레가 앉았다 날아갔다.  듣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한통속으로 기운이 빠져있었다. 다시 적막이 흘렀고 거부할 수 없는 고단함이 밀려왔다. 타심은 진심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듣고 난 소회는, 이렇게 제 속이 왜 떨렸지 알 수 없지만 듣는 내내 한동안 풀피리 소리에 갇혀 살 듯 합니다.” 남자들은 파안대소를 하며 좋아했고 여자는 괜히 옷깃을 여몄다. 집은 방이 두 개있었다. 타심과 남자 하나가, 여자와 남자 하나가 잠자리에 들었다.  타심과 잠자리에 든 남자 하나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불평불만 없이 이렇게 산답니다. 내일은 제가 각시 차지가 되지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할지 모르지만 한 여자를 사랑한 공정한 운명이라 그렇게 이해하십시오. 서로 당번이 되면 잘해주려는 정성으로 우린 불평불만 없이 잘 살고 있답니다. 동자스님.” 늦게 잠들었지만 한숨 눈 붙인 푸석한 얼굴로 타심은 몰래 빠져나왔다. 서둘러 지족암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탁발도 그렇지만 세상사 귀동냥, 눈동냥도 수련의 과정이라고 큰스님의 가르침이 있었다. 강폭을 따라 걷는 도중에 빨래터가 보였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아낙들이 모여 시시덕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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