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머리(9) 아낙들의 해방감은 여지없이 빨래터에서 드러났다. 눈치를 보거나주눅들 이유가 없는 고만한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손으로는 빨래방망이를 두드리고 뗏국물을 빼며 제 할일을 하면서 입으로는 온갖 말을 쏟아내었다. 타심의 눈에는 신기하게보였다. 두 가지 일을 능수능란하게 해치우는 아낙들이야 말로 진정한 고수였다. 깔개에 펑퍼짐하게 앉거나 쪼그리고 앉아 세상의 근심걱정과 살을 붙인 소문들을 양성하는본거지가 빨래터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속살을 감추는 고쟁이가 훤히드러나도 아랑곳없이 추임새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그러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아낙은 더욱 더 신명나게 말투까지 바꾸어가며 큰 동작으로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주었다. 빨래터를 지나치는 타심을, 물 먹인 빨래 물기를 짜던 아낙의 눈에 들어왔다. ‘웬 횡재인가’ 하는 눈빛으로 아낙이 타심의발걸음을 세웠다.“광녀(狂女)의 집에서 하룻밤은어떠했수? 스님.”타심은 멋쩍게 웃으며 그 자리를피하려고 했다. 그 모습이 풋과일처럼 보였는지 아낙들은 낄낄 거렸다. “하룻밤 묵은 소감을 있는 그대로 거짓말 보태지 말고 털어놓아 보슈. 동자스님.” “잘 대접받고 천마산으로 갈 뿐입니다.” “에이, 그거 말고, 광녀의 곁에서손발이 되어주는 남자 둘과 광녀가풍기는 색기에 대해서 말해달라는거지. 대접 받는 것은 어디에나 흔한 일이지. 안 그런가? 안동댁.” 안동댁은 자신의 찰진 허벅지를내리치면서 맞장구로 응수했다. “저녁상을 물린 다음 풀피리 공연이 전부입니다. 많은 대화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눈치라는 게 있잖아요.혹시 광녀가 광녀인 척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슈?” “네? 설마.” “바람처럼 다녀가는 스님에게 별이야기를 다하지만, 그 여편네가 보통내기가 아니라우. 아 글쎄, 남자둘은 형제인데 어쩌다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우. 그런걸 알고 이여편네가 한 남자에게 만족을 못했는지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미친척 하며 두 남자를 자신의 품속에넣어 버렸다우. 남자 둘은 여자의미친 원인이 서로의 죄책감이 되어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저런 괴상망측한 동거가 시작되었고, 여기까지전해 들었다면 어젯밤 뭐 짚이는 것은 없수?” 타심은 어젯밤 풀피리를 불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거머리의 흡반 같은 입술과 게슴츠레한 눈빛과낭창낭창한 허리에, 산월이 다된 불룩한 배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의심하려면 수만 가지가 되고 무덤덤하게 넘어가려면 남자 둘 딸린 광녀일 뿐 크게 호기심을 자아내진 못하였다. 다만 여자의 입술이 상대의몸 어디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거머리의 빨판처럼 보였다는 것이 기이했다. 그것도 처음 본 인연인데도 불구하고 편견 없이 바라본 타심의 마음속을 타종하는 이유를 곱씹으며 빨래터에서 멀어졌다.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거기까지 따라왔다. 강폭이넓어지는 곳에서 두 남자를 다시 만났다. 형제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찬찬히 얼굴을 뜯어보니 정말 닮아있었다. “통발이 시원찮습니까? 표정이밝지 않네요.” “상류가 탁하니 물고기들 씨가말랐습니다. 스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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