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1)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합하여 후금국을 세우고 태종 때 국호를 대청으로 개칭했다.
물론 그전부터 수많은 침략으로 야욕의 승과를 보고 싶은 마음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외세확장을 꾀하게 되면 늘 조선은 과녁이 되었다.
그만큼 만만하다 못해 속국으로 여기기까지 했으니 오죽했으랴.
침략으로 약탈, 방화, 살육, 겁탈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기본적인 방어에 급급했고 선제공격은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했다.
흉년으로 제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했고 먹을거리 입을 거리에 매달려야 했다. 청나라든 명나라든 여진족이든 백성들은 하나로 지칭했다.
뭉뚱그려 ‘오랑캐’였다. 오랑캐의 출몰은 보장받아야 하는 삶을 분탕질해 놓았다.
그들의 만행은 풀뿌리라도 끓여 먹으며 버틸 희망의 동아줄을 싹둑 잘라버리는 잔인함에 있었다.
눈물도 피도 없는 서릿발로 산천을 떨게 하였다. 곳곳에 시체가 눈에 띄었으며 겨울에도 시체 썩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수도승으로 떠돈 타심(他心)의 발걸음도 어느덧 세 번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겨울은 탁발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바랑 속 발우가 덜거덕 거릴 때마다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허기는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발우의 울음소리는 주인이 제 할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송구함도 있었다.
승복 안으로 자연스럽게 찬바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군데군데 헝겊을 덧댄 승복에서 이미 냉랭한 찬바람이 둥지를 튼 듯 시리고 고달프고 추웠다. 폭이 넓은 어느 강가에 이르렀다.
얼음이 짱짱하게 강물의 흐름을 멈추게 하고 있었다. 타심은 알고 있었다. 저 얼음 밑에는 끊임없는 자연의 순회가 부딪히기도 빠져나가도 하면서 삼라만상이 절절히 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순백의 뼈를 꿈틀거리며 종족 번식에 혈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타심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질문을 던졌다.“당신은 누구십니까?”가슴팍에 비수를 꽂는 허기로 주린 배를 움켜잡았다.
강어귀에 늘어진 깡마른 버드나무 둥치에서 새겨지는 둥근 나잇살처럼 자신의 이마에 주름살이 잡혔다. 단지 앉아서 쉬고 싶었다. 그만큼 지쳐있었다. 첨벙첨벙 찬바람이 왁살스런 소리를 내며 지나쳐갔다.
한껏 몸을 움츠렸다. 강가에 덮인 얇은 얼음 밑으로 창백한 얼굴을 드러낸 시체가 멈춰있었다. 타심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 함성의 끝에서 요란하게 달아나는 사슴이 타심과 점점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사슴은 용케도 타심과 부딪히지 않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사슴이 지나친 얼마간의 간격이 노린내를 감지할 만큼 가까웠다. 수없이 넘나들던 강물이라 착각한 사슴은 이내 얼음위에서 허둥대기 시작했다.
앞발을 옮기면 뒷발이 미끄러지고 뒷발에 중심을 잡으면 여지없이 앞발이 미끄러졌다. 타심은 사슴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곧 닥친 사람들의 형색을 보고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 둘 딸린 부부로 보였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매무새에 뗏국이 자글자글한 모습에서 더 절실한 쪽이 누구인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깡밖에 남지 않는 맹수의 눈빛으로 망설이지 않고 얼음 위를 뛰어든 남자는 사슴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