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4)타심은 쇠스랑과 도끼가 구석으로 밀려나 통증을 호소하는 것을 경계를 풀지 않는 채로 쳐다보았다.정수리를 감싸고 쩔쩔매는 쇠스랑과 목울대의 고통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도끼에게 연민을 느끼기에는, 수도승으로 떠돈 세월이 만만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상대의 방심과 허점을 이용하여 무차별 공격을 가해오던 약육강식의 생리를 몸소 체득하고 있었다. 나라는 온통 기근에시달렸고 때맞춰 변방에서부터 오랑캐의 침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독기를 품은 듯 스스로가생사에 책임을 져야할 곤궁으로 내몰렸다. 죽일 각오로 덤벼드는 상대와 맞서려면 어떠한 자비도 동정도 있을 수가 없었다. 항상 죽음은 가까이에서 목격되고 손에 피를 묻혀야만 살 수 있는 지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타심은 냉정해져야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맞은편에 서있는 창이 주춤거리고 있는 타심을향해 덤벼들었다. 창끝은 예리하고 살기가 실려 있었다. 번쩍거리며 타심의 옆구리 옷깃을 흔들어놓았다. 간담이 서늘했다.동굴입구에는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쪼르르 나와서 간절한 눈빛으로 타심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계집 아 이 의손에는 반쯤 뜯긴 사슴의 갈비뼈가 쥐어져 있었다. 천천히 창을 낭떠러지 쪽으로 몰아갔다. 자칫하면 아이들을 인질삼아 위협해 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대처이기도 했다. 압박해 들어오는 타심의 기세에 물러서면서 창은 문득 뒤를 돌아봤다. 낭떠러지였다. 낭떠러지라고 깨달은 순간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고 생각한 창이 옹골차게 버티고 섰다. 약간의 대치로 정적이 흘렀다. 타심은 막대기 하나로 바닥에 원을 그렸다. 창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치고나갈 빈틈으로 읽었는지 무차별 창을 세워 공격을 가해왔다. 지족선사가 일러준 싸움의 가르침 속에 포함된 대목이 생각났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대는 다급하게 허점을 낚아채려 할 것이다. 확실하지 않는 허점에도 확신을 느껴 공격해 오는 수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처한 상황을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욕구가 강하니까. 더욱 더 야수의 이빨로 덤벼드는 상대의 치명타는 급소를 가격해야만 상황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빠르고 묵직하게 한방으로 끝내라. 타심은 창의 공격을 슬쩍 피하면서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막대기로 가차 없이 낭심을 향해 내리쳤다. 외마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창은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왠지 그 고통이 여과 없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승기는 잡았지만 싸움의 뒤 끝에 오는 개운하지 못한 감정은 늘 타심을 힘들게 했다.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도적들을 아이들이 나서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렸다.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도적들은 속수무책으로 아이들이 굴리는 대로 기력 없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낭떠러지 밑은 돌무더기가 수북했다. 남자가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시키려 듯 타심에게 한마디 던졌다.“한번은 온정을 베푼다고 치료해주었는데 제 에미에게 달려드는 것을 목격하고 난 뒤 아이들이 저렇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굳이 말리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타심은 모닥불 앞에 앉았다. 불꽃이 그려내는 세상의 그림자와 열기와 고즈넉함이 어딘가로 번질지 모르는 혼돈처럼 뒤엉키고 있다고 생각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