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5)타심은 낭떠러지 끝에서 아래를 쳐다봤다. 들쑥날쑥 솟아오른 바위틈 사이로 이미 백골이 되었거나 뒤엉킨 채로 썩어 들어가는 아비규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놀랍도록 연고가 없는 흉물스런 시체들을 이곳으로 죄다 버린 모양이었다. 까마귀와 늑대와 멧돼지가 들끓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사방팔방에 퍼져있는 악취의 진동도 쉽게 이해가되었다. 수많은 시체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죽음으로 뜨겁게 널브러져있는 모습을 아이들도 봤을 게다. 응당 골짜기가 주는 창궐의 기운을 느낀 아이들에게 일말의 망설임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낭떠러지 아래로 부상을 입었거나 말거나 내동댕이치게 하는 죄의식 없는 용맹함으로 아이들은 팽배해있었다. 타심은 왠지 씁쓸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골짜기에서 육신의 생을 일제히 마감하고 있었다. 이승의 고단한 삶은 짓물러져 골짜기 사이로 퍼져나가고, 이곳의 침엽수들은 더욱 청청하게 단단한 뿌리를 약속하고 있었다. 타심은 낭떠러지 아래로 발길을 옮겼다. 군데군데 오랑캐들도 보였다. 우 우 우 골짜기가 울고 있었다. 생전의 미련과 집착을 끊어주는 염불 의식은 단출했지만 타심의 마음가짐은 화덕처럼 달아올랐다. 지족선사의 등 뒤에서 눈썰미로 익혔지만 지금은 자신이 주관해야하는 몫으로 우뚝 섰다는 것을 알았다. 미련 많은 생과 두고 가지 못한 원망을 떨쳐버리도록 아미타경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억겁의 윤회가 돌고 돌아 예전의 그길로 돌아올 때까지, 그래서 아쉽게 떠나가는 일없이, 쇠심줄 같은 다음세상에서 살아나라고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타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토록 많은 죽음 앞에서 본래대로 돌아갈 육신과 실체가 없는 허깨비를 분리하는 금강경에서 한발 더 나간 인생 무상함을 일깨워주는 반야심경으로 목맨 염불은 서서히 잦아졌다. 실상자신이 저지른 살생을 조금은정당화 시킬 마음이 앞서 있었다. 그러기에 간절히 매달려 골짜기 곳곳에 둥글게 새겨 넣기를 마다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 있었다. 사정없이 후려치듯이 불어오는 맵짠 바람을 피해 타심은 낭떠러지위로 기어올랐다.
시체 더미 속 골짜기 바람은 계절에 상관없이 머리를 푼 채 달려들었다. 원혼의 울부짖음과 천연적 울림의 통로로 이미 낙점되어있었다. 골짜기가 주는 원통함이 잦아들기에는 애초부터 희박했다. 나무와 바위와 바람이 부비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움찔움찔 들꽃으로 살아나 낭떠러지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려올 때보다 올라가는 체력이 두 배로소진된 것처럼 힘에 부쳤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춰버린 시체가 아닌, 시체의 넋을 위로하는 계율자이기 때문 이었다.동굴에 왔을 때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며 떠들고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경계심이 없는 붙임성으로 아이들은 다가왔다.“부모님은 어디 가셨나?”“먹을 걸구하러 나갔는데요.”곳곳에 위험이 매복되어 있기에 타심은 걱정스럽게 주변을 살펴주고 싶었다. 동굴과 그리 멀지 않는 수풀더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작은 발소리로 다가갔을 때 여자와 남자가 알몸으로 뒤엉켜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타심은 온몸이 경직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