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1)사월 열아흐레 날. 수도승으로 떠돌던 적문은 명신암에 잠시 들렸다. 산길이 험한 탓도 있지만 정진하지 못한 예불이 마음에 쓰여 바랑을 내려놓았다. 어깻죽지가 비로소 뻐근하게 다가왔다. 사계절을 떠돌다보니 다시 봄 중허리에 닿아있었다.실로 고단하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여정에 동행해준 가죽미투리를 댓돌위에 가지런히 모셨다. 방으로 들어와 벽에 기댄 채 구들온기에 잠이 들고 말았다. 소량의 잠마저 털어내듯 혼곤하게 잠의 늪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마도 명신암의 주지인 명신도 잠결에 다녀가는 것을 보았다. 더 자라며, 너울너울 손짓하는 모습이 적문의 의식 속에 남아 있었다. 명신은 입문한 적문의 삭발을 도와준 인연으로 발걸음이 닿으면 만나는 정도였다. 그 인연 소중하다며 애틋한 마음씀씀이를 보이는 명신에 비해, 적문은 필요할 때만 육신을 의탁했다. 때로 그것이 마음에 걸리곤 했다. 이번에도 수도승으로 떠돌다 빈 마음 한구석을 채울 요량으로 찾아들었다. 가급적 명신의 터전 안에서 명신의 시간을 따르겠다는 각오를 넌지시 굳히고 들어왔다. 그래야만 명신암의 위상과 체통이 서는 주지(住持) 명신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워낙 자유로운 영혼으로 떠돌던 적문이었지만 항시 명신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새벽 향기가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적문은 예불을 위해 발걸음을 법당으로 옮기고 있었다. 내방객을 맞이하는 암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분명 간드러지는 물소리였다. 봄바람을 타고 넘은 산야는 새벽 기운을 얹어 수묵화처럼 여백의 미를 발산하고 있었다. 먹물 머금은 붓이 지나간 자리는 번짐의 기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 미닫이 문 곁에 바짝 몸을 낮추었다. 나직하게 머리를 내미는 호기심을 거두지 못하는 자신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허나 침을 흠뻑 묻힌 손가락은 문풍지를 뚫고 있었다. 적문의 스무 살 가슴은 왕왕 짖어대고 있었다. 방안에는 왁살스럽게 버텨온 적문의 정진이 여지없이 동강난 모습자체였다. 한 여인의 알몸이 거치적거리지 않고 문풍지 구멍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저토록 곱고 은밀하고 만개(滿開)한 여인의 몸뚱이 앞에서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단지새벽예불을 위해 일찍 눈을 떴을 뿐이었다. 법고소리가 울리기 전에 마당을거닐었을 뿐이었다. 이끄는 대로 문풍지에 구멍을 내었을 뿐이었다. 필시 새벽예불을 위해 목욕재계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자태는 실로 놀랍고 황홀했다. 맺힌데 없이 매끈하게 떨어진 허리선이며 표주박 두 개를 엎어놓은 엉덩이며 붉게 물든 능금만한 젖가슴은 가히 물찬 제비였다. 적문은 목젖까지 차오르는 열기로 더 이상 훔쳐볼 수가 없었다. 얼굴도 확인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뒷걸음쳐서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때맞춰 법고를 치기위한 부산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도량석(道揚釋)에 맞추어 목탁이 울려 퍼졌다. 모두 깨어나는 새벽이었다. 가사 장삼을 입고 한 줄로 서서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법당으로 향하는 행렬의 묵직한 발걸음도 들려왔다. 목탁을 그치자 누각에서 법고(法鼓) 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둥둥둥둥, 만물을 소생시키는 북소리이지만 적문의 놀란 심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법고에 이어 목어(木魚)와 운판(雲版)을 두들겨 물고기와 새를 깨우고 나면 범종 소리가 만물을 열어놓을 기세로 서른세 번 울려 퍼지고 있었다. 허나 적문의 가슴에는 세찬 비바람이 들어차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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