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5)적문은 식후삼매경으로 사랑채를 거닐었다. 까닭 없이 슬픈 얼굴을 내민 노란 씀바귀들이 담벼락아래에서 촘촘히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노란 나비가 앉으니 무던한 조화가 만들어졌다. 삼라만상이 기다린 봄을 공평하게 각자 챙기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날아든 작은 씨앗이 흙속에서 때를 기다려, 씀바귀 틈새를 비집고 나온 철쭉이 눈에 띄었다. 한그루 붉은 철쭉은 핏빛처럼 섬뜩했다. 번민 속에 잠겨 있던 번뇌가 갑자기 걷혀지는 느낌을 받았다. 꽃잎의 겉면에만 살짝 칠해진 붉은 물이 아니라 꽃잎 속에서부터 짙게 빠져나온 듯 우렁찼다.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적문의 몸은 조용히 눈물을 길어 올렸다. 세상에 무엇이 이토록 야멸찬 통증으로 적셔지는가. 갈 길이 바쁜 이십대이기에 그런가. 부처와 불법(佛法)과 승가(僧伽)로 돌아가 의지하여 구원을 청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약해서 그런가. 내내 끊지 못하는 탐욕으로 저리도록 스산해지는 마음의 정곡에 들어차는 유혹이 그런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아둔하고 미혹에 빠진 중생이기에 해탈에 이르기까지 윤회를 반복한다면 씀바귀도 철쭉도 방아깨비도 개똥지빠귀도 어느 세상에는 그 몸으로 살터. 예전의 그 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시감은 남아 있지 않으려나. 적문은 사랑채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수도승으로 함께 떠돈 미투리가 댓돌위에 나직하게 엎드려 있었다. 바랑의 무게를 기억하는 것도 미투리의 몫이었다. 미투리 곁에 짚신을 벗어두고 사랑채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순간, 인기척을 느꼈다. 당혹스럽게 적문은 방안을 살폈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왔을 때 사물을 쉽게 구별하지 못하듯 누군가 누워있다는 생경감만 가득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이는 서당에 갔습니다.”가슴만 도드라지게 보이는 옥주가 누워서 빤히 적문을 쳐다봤다. 이 혼란한 상황이 왜 자신에게 펼쳐졌는지 악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적문은 거짓말같이 무릎을 꿇었다. 이미 굼돔마을로 들어서는 한걸음 한걸음에 묘한 전율이 실려 있었다. 반드시 명신암에서 새벽예불을 위해 몸단장하던 여인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온 힘으로 안을 것이다. 그 여인이 막무가내로 버틴다 해도 살점 한 점 깊숙이 밀어 넣을 것이다. 파계승이 되어도 좋고, 깊이 파인 마음속을 들추면 부처를 따라잡을 요지부동 깨달음이 여인으로부터 비롯되니까. 사실 적문은 죄를 알면서도 옥주의 가슴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업보다. 더듬어보니 업보의 수순이다.심장소리 들렸던가. 계율을 어길 것이다. 그에 준하는 형벌이 온다고 하더라도 두렵지 않다. 떨림이 가라앉지 않는 옥주의 신음소리에 맞춰 성급하게 옷을 벗기려 했다. “얼마쯤은 기다릴 줄 알아야 고기 망태기를 채울 수 있지요. 호호.”적문은 옷깃 안으로 손을 넣어 맨살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이 유혹의 끝을 알 수 있을까요?”앞장서는 젖꼭지를 엄지와 집게로 문질러주면서 적문은 내심 숫총각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옥주의 손길에 쉽게 정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적문을 치마폭으로 감싸주었다. 품고 어르고 달래주면서 적문의 옷을 한꺼풀씩 벗기는 옥주의 손길은 섬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