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8)공중에 맨 줄은 줄광대의 몸짓에 따라 팽팽 소리치고 있었다. 어릿광대의 능청스러운 이야기와 발림은 끊이지 않고 신명을 더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긴장을 더하게 육잡이들의 악기연주가 비질처럼 바닥을 쓸어가는 가 싶더니, 순간 장구소리가 튀어나오고 줄광대가 줄 위에서 삐끗 했다. 구경꾼들의 머리끝이 쭈뼛 섰다. 줄광대가 허공에서 한 다리로 줄을 감아 추락을 막고 있었다. 어릿광대가 한마디 거들었다. “육시랄 놈, 이제나 저제나 질긴 인연 줄이 끊어질까 이 순간을 기다렸는데 용케도 버티는구나. 대갈통이 먼저 떨어져 이마빡이 작살나버리면 뒤도 안보고 혈혈단신 떠나갈까 했는데 저놈 버티는 악바리 좀 보소. 여기모인 양반님아, 상것님아, 박수와 함성으로 반듯하게 서게, 십시일반 힘 좀 보태소. 어기영차! 어기영차!”줄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로 버티고 있던 줄광대가 접었던 부채를 펼치면서 핏발이 곤두선 얼굴을 일으켰다. 구경꾼들은 두 손을 높이 들어 자기 일처럼 환호했다. 극적으로 살아난 환한 표정으로 줄 위에서 걷거나, 뒤로 걷거나, 한 발로 뛰거나, 걸터앉거나, 드러눕거나, 공중으로 뛰어 올라 착지하거나 구경꾼들의 마음을 온통 훔쳐가 버렸다.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이며 연주하는 육잡이의 가락이 잦아질 때쯤 줄타기의 공연도 막바지를 치달았다. 옥주가 꼭 보라던 줄타기의 이유를 적문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인생의 굴곡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더욱이나 파계승으로 옥주의 그늘에서 하루해를 넘기고 있는 적문에게는 된통 서릿발처럼 다가왔다. 수도승으로 떠돌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알 수 없는 번민으로 몸을 뒤척이지 않는가. 적문은 구경꾼 속에서 빠져 나왔다. 화두는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참선수행자의 깨달음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한사람의 걸음으로 바라보고 싶었다.낙숫물 바닥을 버티고 있던 옴팡진 돌 위로 쏙독새가 자리를 틀고 앉아 목을 축였다. 적문은 쏙독새와 합일체를 시도하고 있었다. 한 모금에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고 한 모금에 고개를 젖혀 세상을 보는 것이 마냥 경이로웠다. 전생과 이생의 업을 씻기 위해 쏙독새는 저녁을 준비하고 땅거미에 취해 바람이 다녀간 둥지로 돌아가야 했다. 검불로 둥지의 혼백이 되지 못하면 바시식 바시식 나동그라지는 한세상도 그려졌다. 계절 늦봄은 강열하기만 하고 몸뚱이 시름을 내주던 들숨날숨이 둥지에서 야생화처럼 피었다. 억새풀이 누웠다가 일어선 자리에서 응어리진 절망감이 쏙독새 울음처럼 찾아왔다. 적문의 몸은 또다시 뜨거워졌다. 아직도 버릴 것이 남아있는지, 이토록 애간장을 끓게 하는 것이 남아있는지 먼 들판 지천으로 퍼지는 꽃 향에 코를 맡겼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무성한 꽃 향은 적문의 목젖을 압박했다. 짓누르고 바위처럼 쌓이는 이 무게는 일찍이 감당하지 못한 옹이로 박혀들었다. 적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았지만 몸 깊숙이 찾아온 떨림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다.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대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갔다. 미친 듯 옥주를 찾았다. 다급한 표정의 적문을 보면서 옥주는 순순히 따라왔다. 사랑채로 들어간 적문의 몸은 흡사 강물의 흐름을 바꿔놓는 맴돌이처럼 강력했다. 그 위력 앞에 어느 누구도 순순히 옷을 벗지 않을 수 없었다. 옥주의 알몸위로 적문의 알몸이 완벽하게 겹쳐졌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7-02 01:46:21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