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9)옥주는 알고 있었다. 요즘 부쩍 마음 둘 데 없어 심난하게 방황하는 적문의 속내를 읽고 남사당패 줄타기를 권하였다. 어떻게 듣고, 보고, 느끼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뛰어 들어와 어느 때보다 거칠고 집요하게 다가왔다. 옥주가 이끌어가는 데로 몸을 맡기던 어제의 적문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자신의 몸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욕정을 남김없이 몰아내듯 숨 가쁘게 덤벼들었다. 말없이 받아주면서 곧 떠날 한남자의 여정을, 승낙해 주기에 이르렀다. 한 톨의 기력도 남기지 않고 쏟아 부은 적문이 벌러덩 나동그라졌다. 노을 햇살이 문풍지를 적시며 두 사람의 알몸에서 반짝거렸다. 조금 전까지 흥건했던 신음 소리가 적막 속에 감춰졌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깍지를 끼었다. “혹시 여여(如如)라는 말을 알고계신가요?”옥주도 몇 개의 능선을 넘어온 고단함으로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물들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늘 그대로란 뜻으로 아옵니다.”“여여한 자리에는 삼라만상이 따로 없으며, 부처와 중생이 하나이고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차별도 뛰어넘은 이름 그대로 한 결이라 명명하지요. 출가 수행자나 속세 사람들이나 경계를 무너뜨리면 생로병사로 인한 번뇌(煩惱)와 보리(菩提)가 따로 없다고 생각된 적이 있었습니다.”옥주가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이 말은 자신에게 하고 있었고 곱씹게 하는 말로 자신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파계한 낙오자로 은둔생활에 가깝게 지내고 있었지만 적문의 마음 속 몸짓은 다시 출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수명을 다한 하루살이 떼처럼 세속에 머물러 있느니 화두로 끙끙대는 수행자의 발걸음을 옮기고 싶었다. “처음 가르침을 받을 때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질문에, 자신 있습니다 라며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이 뭐라고 자꾸만 트림조차 나오지 않게 얹혀있었던 게지요.”“줄타기를 권한 이유가 명실공히 척박해도 세상과 소통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돌려 생각하니 세상 밖으로 내몬 꼴이 되었으니 이 또한 제가 감당해야 될 몫이겠지요. 낭군님의 뜻을 꺾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오며가며 닿은 인연을 애써 끊지 마시고 탁발로 들려주시면 버선발로 반갑게 맞아 발우를 채워드리지요. 또 청이 있습니다.”적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삭발을 해드리고 싶은데 괜찮을 런지요?”이번에는 더 크게 적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 옥주가 얼마 후 들어왔다. 손에는 칼이 쥐여져 있었다. 옷을 입은 적문이 꿇어앉아있었다. “날이 선 게 어느 삭도 못지않게 제구실을 할 겁니다. 한 톨의 의심도 내려놓으시고 편히 계시면 됩니다.”정말 바닥에는 듬성듬성 자라나 있던 머리카락이 뒹굴었다. 적문과 옥주가 사랑채 문을 열고 먼 산으로 눈길을 던졌다. 옥주의 손이 적문의 어깨에 걸쳐졌다. “낭군님이 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낭군님을 버리러하오. 몇 번의 파계승으로 찾아오던 개의치 않고 모진 인연이라 받아주겠소. 정진하지 못하고 잡념이 생기면 나약하게 생각 말고 맺힌 꽃봉오리 꽃향기 때문이라 읽어주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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