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통과 시련에 빠져 번민으로 살아가는 사람 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무시겁래 지어온 악업들이 한 꺼번에 쏟아지듯 캄캄한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오고 햇살이 퍼지듯이 시름의 꺼풀이 벗겨지면 반드시 화사한 날이 돌아올 것이다. 앞으로 연재될 글에는 가장 시급한 문제들 때문에 번민하는 분들을 위하여 세상을 바꾸는 지혜는 무엇인지, 행복을 일구는 좋은 생각이 무엇인지, 그리고 더 불어 살아가는 거룩한 공덕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법문이 들어 있으며, 아울러 피안을 향하여 끊임없는 행원을 다하는 불자들이 되시라는 의미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많이 넣었습니다.
(지난호에 이어)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있었 던 일을 통해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 느날 마룽캬풋타라는 제자가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인간은 죽은 후에도 존재하 는지요?”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되물으 셨습니다. “마릉캬풋타라야. 어느 사람이 독화 살을 맞았다고 하자. 그때 이 화살은 누가 쏘았고, 어떤 방향에서 날아 왔으 며, 독의 성분이 무엇인지 따지는 일이 급한가. 아니면 응급치료를 하는 것이 더 급한가?” “그야물론 화살을 빨리 뽑고 응급처 치를 해야 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지요.” 이때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가르치고 자 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공론(公 論)이 아니다. 현재 갖고 있는 고통의 현실을 알고 이를 극복하는 일이다. 내 가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원인, 그리고 괴로움을 멸하 는 길이다. 이 가르침은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지혜와 깨달음의 길이요. 열반의 길이다.” 즉 불교는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는 지혜를 일깨 워 주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지배를 부처님께서는 45년간 설법하시면서 많은 사례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부처님의 말씀은 알면 알수록 우리 생활과 참으로 밀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을 이겨내는 지혜를 실제적인 예를 들어 가며 말씀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나 지금 이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통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에 예를 들 어서 가르침을 주신 것이 지금에도 잘 적용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역시 부처님께서 기 원정사에 계실 때였는데 고타미라고 하는 여인이 달려와 울고불고 야단이 났습니다. 알고보니 유복자인 삼대독 자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아들의 시신을 끌어 안고 슬 픔에 복받쳐 울다가 미치다시피하여 온 성안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가 부처님께서 기원 정사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죽은 아들을 살려 줄 것을 애원했습니다. “부처님, 당신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라 알고 있습니다. 제발 내 아들을 살 려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믿고 따르 겠습니다.”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아들을 살리 고 싶으면 지금 마을에 내려가서 사람 이 죽지 않은 일곱 집을 돌며 쌀을 한 줌씩만 얻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 희망을 갖게 된 여인을 집집 마다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 주일 만에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있던 가?” “없습니다. 이제야 부처님께서 제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귀한 아들을 잃어 버렸으니 어미의 마음이 혼란에 빠져 미쳐버리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들을 살리겠다고 헤매고 다니는 것은 이미 이성을 잃은 행동입니다. 마찬가지 로 현실적으로 아주 고통스러운 문제가 닥쳤다고 해서 세상을 비관하고 원망하 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입니다.“ 귀한 아들을 잃게 된 업보를 깨닫고 다시는 그런 고통이 없는 현실을 위해 좋은 업보를 쌓아가는 것이 운명을 바 꾸는 중요한 일이듯이 세상을 비관하 고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현실의 문제 에 부딪쳐 풀어가면서 좋은 인연을 짓 고 그 인연을 통해 진실한 인생을 살아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와같이 불교는 인연법, 연기론으 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제 시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부귀영 화를 버리고 출가했던 것은 바로 생사 에 대한 의혹때문이었습니다. 즉 왜 사 람이 태어났으며 왜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가 하는 의문을 풀기위해 출가를 하셨고, 고행을 해 그 의문을 푸는데 정진하셨습니다. 드디어 부처님은 깨 달음을 체험하셨습니다. 무엇을 깨달으셨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