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숨이 붙어 있는 한 누구나 ‘시시포스의 형벌’을 면할 수 없다. 살아보면 그 인생이 그 인생인 걸 알 지만 그걸 깨닫기까지 끊임없이 끊임없 이 모순덩어리인 삶 뭉치를 위로 위로 밀어올리는 것이다. 미끄러지고 곤두박 질치는 것이 다반사여서 결국 크게 나 아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는 삶이겠거 니 하면서도 미련하게 그러는 것이다. 코린트의 왕 시시포스에게는 경쟁상 대(?)도, 고행을 함께할 도반도 없었지 만, 인간에게는 다름 아닌 주변에 산재 한 경쟁자와 도반을 가장한 경쟁자가 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의 행보는 자칫 갈지 자 행을 기약 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의 운명이다. 내 나이 마흔셋. 이 나이가 들도록 내가 열심히 해 온 일이라고 는 신문을 꾸준히 본 것과 이 책 저 책을 곁에 두고 곁눈질한 것과 게으르지 않게 궁리하고 남길 가치 가 있다 싶으면 기어이 써 남긴 것이다. 이런 삶 속 에서 나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딴에 부지런히 자 임해서 더 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생각 없이 사는 세상에서, 생각 없이 사는 조직 에서 생각이란 것을 좀은 더 할 여지를 두고 살아 온 것이다. 그 삶이 20여년이다. (한 칠십은 된 듯 한 느낌이지만) 그렇게 이 나이가 돼 보니 아버지 말년에 되뇌시던 “삶은 무서운 거야”라는 그 뜻을 알 것 같아, 정말이지 등골이 서늘한 게 수년은 되 었다. 생각.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생각을 두 가지로 뽑아냈다. 로고스(논리)와 미토스(이야기). 기사문을 쓰든, 논문을 쓰든, 소설을 쓰든 쓴다 는 것의 본질은 로고스와 미토스란 생각치기다. 이 생각이란 것은 남의 생각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생각이어야 한다. 남의 생각에 기대 글을 엮고 쓴다는 것은 습작 과정에서나 할 일이지 전문 글쟁이가 되어선 남의 생각 따위, 문장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옳다. 인간이 생을 옳게 영위하는 방식은 로고스를 갖 추고 그 다음 그 로고스를 직조하고 나열하는 일 을 사랑하고 좀은 욕심을 부려 콘텐츠(=미토스)를 풍성하게 확장하고 갖추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시시포스의 형벌’은 끝끝내 날카로운 부메랑이 돼 자신의 목을 칠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은 이 형벌의 무게를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현대인의 목을 정조준하고 있다. 생각 없이, 남들 다 그러고 산다며 자조하고 자 위하며 안일하게 살아가다가는 어느 틈에 목전까 지 날아온 무시무시한 부메랑을 고리눈을 한 채 속수무책으로 목도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사회인(=직장인)이 되면 항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지극한 사랑과 치미는 분노 같은 극 단의 마음표 만큼이나 중히 여기고 간직하고 지내 야 한다. 권력 곁에, 황금 곁에, 여자 곁에, 또 다른 터졌다 하면 큰 사고가 되는 각종 유혹 곁에 있는 자라면 특히나 이 점을 각별히 유념하면서 살아야 한다.내가 기자가 되어 명함첩 기준으로 3,000명을 만나 보고 내린 결론은 생각 없이 산 자들의 말로 는 그 나이가 이르거나 늦거나 끝끝내 추락으로 마감되었다. 이른 나이에 추락한 자들은 건강을 디딤 발로 재기에 성공하거나 입에 풀 칠은 할 수 있게 됐지만, 마흔 중반 이 후에 자빠진 자들은 일장춘몽 같던 지 난날을 회개는 할지언정 영영 기사회생 은 하지 못하고 변경으로, 변경으로 밀 려나 쭈글쭈글한 삶을 연명해 나갔다. 내가 서른한 살 던진 사직서와 마흔 세 살에 던진 사직서엔 지극한 마음표 의 획책이 있다. 아니다 싶을 때 끊어 내는 건 웬만한 용기 없이는 할 수 없 는 일이다. 용기의 소산은 역시 생각이 다. 생각이란 단순히 떠올림을 뜻하지 않는다. 앞과 뒤, 좌와 우 온 사방을 고 루 살핀 뒤 예스 오얼 노의 각을 세우는 것이다. 명징해진 생각이 노라고 표표히 떠오를 때 부정 하고 외면하고 예스의 길로 간다면 그 인생은 이 미 죽은 인생이 된다. 인생의 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대비해 치망 순역지(齒亡脣亦支)가 있듯 토사구팽(兔死狗烹)에 상대해 양금택목(良禽擇木)도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것만 알고 살면 먹통이 된다. 이가 없으면 입술에 의지해 살면 된 다는 의기와 결단을 알고 실천하며 살면 마땅히 순통이 된다. 마찬가지로 조직이라는 것이 생리적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것만 알면 기어이 토사구팽 을 면할 수 없다. 자신이 똑똑하면 좋은 자리를 만들어 꿰차면 그 만이라는 것도 알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고, 하늘은 녹 없 는 사람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한시 도 이 생각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바짝 당겨 옥죄야 하는 게 생각의 끈이다. 이걸 슬금슬금 풀기 시작할 때 그 인생은 요단강 행을 재촉하는 것이다. 생각의 끈을 놓는다는 건 정신 줄을 놓는다는 것이다. 인생은 정신 줄 놓고 경거망동하면 폭망이 다. 늘 진중해야 한다. 그러나 결단은 빨라야 한다. 인생은 긴듯해도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노 는 시간 이것저것 뺀 경건한 노동시간만 치면 지 극히 짧다. 그 짧은 시간에 주춤대는 횟수와 그런 시간이 많다는 건 인생을 좀 먹는 거다. 내 나이 마흔셋에야 겨우 이런 생각을 밝힐 수 있음을 나는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다. 하나 어쩌겠 는가. 그게 내 그릇인 것을. 그래도 영 섭섭해할 일 만은 아니다. 현대사회에는 상대적 기회가 넘치고 넘친다. 생 각 없는 사회에서 조금만 생각을 하면 내 인생에 서 대성할 기회는 아직 수 번은 남아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그러니까 로고스 와 미토스를 풍성하게 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로고스가 완성되면 정작 중요한 건 미토스라는 걸 알게 된다. 콘텐츠가 부족한 자는 부실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은 뒷날 짐이 될 만큼 묵직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 노라 자기 양심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삿됨과 기만과 술수로 점철된 삶은 반드시 후과 를 치르게 돼 있다. /심보통 20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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