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1)  인구 이만의 만강읍(邑)에서 깊고 달콤한 잠을, 이틀을 누렸다. 주렁주렁했던 피곤이 제풀에 꺾인 모습에 한껏 개운했다. 힘이 들어간 기지개도 하였다. 해가 중천에 뜬 정오였다.  한 달 치 방세를 준 민박집 마당에 홍백색 오동나무가 울창하다. 저 푸른 잎을 매달기 위해 묵묵히 비와 바람에 맞섰을 것이다. 결이 곧고, 갈라지거나 비틀림이 없어 가구제작에 적격이라는 오동나무가 괜히 반가웠다. 오동잎 사이에서 시월, 바람소리가 고즈넉이 잔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오동은 또한 천년이 지나도 가락을 잃지 않는다고 해서 가야금과 거문고 재료로 입증을 받았다지 않는가. 나뭇가지 파장은 바람 현(絃)을 건드려 한음 한음이 알차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끼 때가 되었을까. 하기는 이틀 낮밤을 죽은 듯이 있었다는 것 외엔 배를 채운 기억이 별로 없었다. 아마 민박집 아주머니도 숨소리만 확인하고 깊은 잠을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을 일으키다가 잠시 휘청했다. 순간적인 현기증으로 중심이 흔들린 모양이다. 벽에 기대어 시간을 벌었다. 벽지는 오래된 흔적을 군데군데 새겨두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휴식을 위해 같은 이불에, 같은 베개를 공유했을까. 색이 바래어져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먼지 먹은 창틀에 시선이 꽂혔다. 곧 창문을 열었고 어디선가 두엄냄새가 다투어 들어왔다. 창문 너머 풍경을 보기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들판 주위를 두른 야산들이 동네와 동네의 결속력을 배가시켜주고 있었다. 시골 두엄냄새와 들판과 야산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속으로 왠지 탄성을 질렀지만 입가는 엷은 미소만 띄웠다.   어디선가 갑자기, 번쩍하는 섬광과 고막을 몰아붙이는 굉음이 야산의 한 귀퉁이를 강타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고 아기 창을 통한 풍경에 전율했다. 뜨거운 열기로 야산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해갔다. 무엇인지 실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무엇을 보았는지 도통 가늠이 되지 않았다.  화염 속에 드러난 형체는 추락한 비행기인 것 같았다. 아니 비행기였다. 처참한 몰골 속에 거대한 비행기가 잿더미로 변하고 있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마른 침만 삼켰다. 어쩌면 꿈속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리모컨으로 뉴스에 채널을 맞추었다.   “실종 전 어떠한 교신도 없었던 보잉 708은 관제탑의 무수한 송신을 뒤로 한 체 만강읍 수유리 야산에 추락했습니다. 생존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블랙박스를 분석해야만 알 수 있지만 버드 스트라이크인지 기체결함인지 밝혀질 것입니다.”   인근에 있던 경찰과 소방대원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얼마 있지 않아 군인들이 경계태세로 야산을 에워쌌다. 생각지도 않는 상황 전개를 우연찮게 목도한 나는 두렵고 가슴까지 숨이 찼다.  벼르고 별러 한 달 휴가로 선택한 만강읍에서 맞닥뜨린 참사는 끔찍했다. 김과장의 추천을 받지 않았어도, 출장길에서 눈부신 햇살로 뒤덮인 만강읍을 떠올리지 않았어도, 이틀을 죽은 듯이 자고 깬 시간이 이 시간이 아니어서도, 무엇보다 벽 한 귀퉁이 아기 창을 열지 않았어도 이 무지막지한 기억을 채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털썩 주저앉아 머릿속을 앵앵 거리며 돌아다니는 화염 속 비행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을사람들의 탄식이 엄청난 무게로 방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마치 비행기 추락의 장본인 것처럼 쪼그리고 앉아 죄책감에 시달렸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1 21:30:22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