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2)  “사망자의 추모 댓글이 끝없이 이어지고 일일이 소개된 변호사 친목회, 직장연수, 신혼부부에 이르기 까지 애달픈 사연은 슬픔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명의 햇살을 관통하며 추락한 보잉 708은 탑승자들의 시간을 멈추게 했습니다. 한사람의 꿈을, 한사람의 사랑을, 한사람의 미래를 깡그리 무너뜨리고 잔해도 없이 이름 없는 야산에 묻혔습니다.”   특집 방송으로 다룬 비행기 추락 사고는 오래도록 화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언가 도움은 되지 않아도 최소한 방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몸을 일으켰다. 생각대로 몸은 무거웠다. 머리부터 곤두박질쳐 화염 속에 휩싸인 또렷한 장면이, 오래도록 나를 괴롭힐 것이다.  시월 찬바람에 재킷을 걸쳤다. 민박집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넋을 놓았고 신발을 신으면서 또 넋을 놓았다. 휴가랍시고 찾아온 이곳에서 스트레스 장애까지 얹어져 갈 셈인가 보다.  멀찍이에서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을 헤치고 무작정 걸었다. 야산 반대방향으로 발길이 정해졌을 때 약간의 속도도 필요했다. 들이 나왔고 논이 나왔고 농로로 그냥 걸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일상의 무게에 찌들렸던 ‘도시’를 내려놓고 싶었다. 둑 위로 올라서자 개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이 마른 곳은 잡풀로 덮여있었고 고라니가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멀리서 바라본 야산은 이제 잔불 정리로 반딧불처럼 날아다니는 불꽃이 군데군데 보일 뿐 사람들로 덮여있었다. 그렇지만 강하게 내리꽂히는 여객기 추락은 여전히 내안에서 활활 타고 있었다.  거침없는 굉음과 화염 속에서 몸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아 시린 물에 손을 넣었다. 손끝에서 소름이 돋았다. 어디선가 뜸부기가 울었다. 억새풀 군락에서 가을벌레도 울었다. 논으로 내달리기 위해 둑 위로 오르던 고라니 한 쌍이 나를 보고 기겁을 한 체 각기 흩어졌다.  나를 가운데 두고 저토록 절절한 울음소리에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 주었다.  오후 가을바람에 이슬비가 내렸다. 더는 무작정 갈 곳이 없을 것 같았다. 촉촉하게 스며드는 이슬비를 맞으며 민박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손꼽았던 한 달의 휴가와, 여객기 추락과, 고막에 꽂히는 고라니 울음과, 이슬처럼 슬몃슬몃 이슬비에 젖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충격적이고 길었다. 발걸음은 옮기고 있지만 무게가 실리지 않는 헛발질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중심을 잃고 싶진 않았다. 가급적 야산에 눈길도 주고 싶지 않았다. 허나 낚시 바늘에 물린 눈꼬리처럼 숨길 수 없이 야산 쪽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치뜬 눈으로 야산을 보고 또 보았다. 억울하게 죽은 혼령들이 이미 야산 주위를 배회하는 것이 내 눈에 읽혀졌다.  두렵고 서늘했다. 이슬비에 젖은 몸에서 더운 안개가 스물 스물 올라왔다. 빗발이 더 굵어졌는지 오한의 강도가 심해졌다. 코로나 덕분에 잊고 살았던 감기가 은근히 걱정되었다.  내일 쯤 한 달 치 방세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 검색작업 수순을 생각했다. 후줄근하게 집에 들어온 나는 민박집 공동욕실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꼼꼼하게 한 비누칠이 달아나도록 씻고 또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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