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3) 민박집 밖은 새벽부터 소란했다. 비행기 잔해의 부속품 하나까지 쓸어 담기 위해 동원된 인원은 어림잡아 삼백 명 이상이라는 뉴스를 증명하듯 시시각각으로 수많은 발자국 소리가 채집되었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휴가지를 옮길 계획을 세웠기에 심리적으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았다. 아, 그렇다. 세상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에 크게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런 계획을 마음속에 심어두었을 때부터 좌불안석에서 벗어난 안정을 이미 찾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하등의 옮길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머릿속이 더 맑아졌다. 뒤척거렸던 잠자리와 소량의 수면에 반비례하여, 개운하고 달콤한 수면으로 신기하게도 몰아갔다. 다시 한 달을 버틴다며, 누워서 발끝으로 길게 기지개를 하였다. 온몸의 힘줄이 도약을 위해 팽팽하게 힘을 더하고 있었다. 아침 먹기 전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무심히 스치는 아침바람이 경쾌함을 더해주었다. 야산으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몸뚱어리로 떠받쳐주며 쌓아올린 산처럼 빽빽하고 울창한 인간들로 야산은 뒤덮여 있었다.  저 북새통속에서도 살아남은 생명체는 곧 야산의 주인으로 인간들이 떠난 자리를 메꿀 것이다.  그것이 이제껏 경험한 자연의 원대한 순리이니까. 어제 갔던 들녘보다 더 나간다는 생각이 걸음에 힘을 실었다. 억새군락지에서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가 왠지 똬리를 튼 뱀들의 교미소리를 연상하게 했다. 한 번도 그 모습을 실제 보지 못했지만 동물의 왕국이나 영화 장면에서 이입되어 실재처럼 연상케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상해보라. 억새를 가림막 삼아 곳곳에 흩어져있던 수천의 뱀들이 집결하는 장관을. 끊임없이 모여들고 같은 종끼리 뒤엉켜 서로의 온기에 맞게 수컷과 암컷의 애증어린 결합을. 씨앗을 퍼뜨리고 씨앗을 품는 당연한 부름에 화답하는 핏줄의 가계를. 독기를 감추고 최대한 뜨겁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둥근 생명체에 내일을 열어주는 온당하고 값진 합일을. 시침을 뗀 억새는 바닥으로부터 뒤엉켜 값진 수고를 마다않는 뱀들을 위해 기꺼이 지붕이 되고자 했다.  개울이 끝나는 곳에 강물이 흐를 것이다. 낙동강의 부름을 받은 자호천에 이르렀다. 가을 강변에 맞는 강물이 잔잔하게 물결을 그려냈다. 얕은 곳에 뿌리박힌 돌에서 푸른 이끼가 자생하고 있었다. 어느새 정오로 치닫는 가을햇살이 귀찮아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차양막을 하였다. 벨소리에 전화를 받았다. 민박집 아주머니였다.  “식사시간을 넘기셨네요. 곧 들어오실 거죠?” 그랬구나, 그래서 배가 고팠구나. 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먼저 드시죠. 혹시 제 시간에 못 들어가면 한 끼 건너뛰죠.” “그러지 말고 들어오는 데로 차려 줄 테니 뒤숭숭한 마음 추스르며 경치 구경 마음껏 하시다가 오세요.”  왠지 주위 사람들에게 성가시게 하는 모습이 싫어서 걸음을 돌려세워 바쁘게 걸었다. 야산으로 통하는 농로에서 한 여자와 맞닥뜨렸다. 그 침통함이라니, 인간의 얼굴이 저토록 핏기 없이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여자와 단지 좁은 농로에서 어깨만 기울었을 뿐인데 여위어지고 부러지는 그녀의 시간이 섬뜩하게 읽혀졌다. 순간 야산의 여객기 희생자를 떠올렸고 여자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1 21:35:00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