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6) 능청스런 얼굴을 앞세운 민박집 아주머니가 양은밥상에 식사를 담아 방안으로 넣어주며 한마디 던졌다.  “능력도 좋아요. 어색한 사이인걸 봐선 산책길에 눈이 맞은 거 같은데.”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양은밥상을 가운데 옮겨놓았다. 뚝배기에 된장찌개가 보글거리며 시각과 청각과 후각을 기선제압하고 있었다. 겉절이며 멸치볶음이며 계란프라이가 밀려나지 않으려고 각축을 벌이는 정갈한 밥상이었다. 머뭇거리는 여자에게 수저를 집어주었다.  “속이 따뜻해야만 세상 보는 눈도 따뜻해진답니다. 며칠째 식사다운 식사를 분명 드시지 못했을 건데 억지로라도 빈속을 채우세요.” 여자는 느릿하게 움직여 된장찌개를 밥 위에 올려 비벼서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속엣말이 하마터면 밖으로 나올 뻔 했다. 속도에 맞춰 식사를 하다가 반 틈 남기고 물러앉는 여자를 보며 나도 왠지 수저를 놓았다.  “믹스커피 밖에 없는데 괜찮겠죠?” 밥상을 들고 나가면서 당연한 말을 익살스럽게 던졌다. 가게나 식당도 없는 시골에 당연한 믹스커피를 건드리면 혹시나 웃을까 하는 희망사항이 깔려있었다. 허나 여자의 그늘진 이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쟁반에 커피 두 잔을 앞세워 방문을 열었을 때 여자는 옆으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충격과 슬픔과 피로가 전신을 내내 누른 탓일까. 뱃속을 채운 소량의 음식물이 긴장감을 무장해제 시키며 무너지듯 달콤한 수면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뒤꿈치를 들고 구석에 놓인, 채 풀다 만 여행 가방에서 휴가를 염두에 두고 산 핫셀블라드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날씨와 빛의 방향을 육감만으로 일치시키기에는 편차가 큰 탓에 노출계도 챙겼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동호인으로서 자부심은 대단했다. 광각줌렌즈와 다른 장비도 챙겨 뒤꿈치를 들고 뒷걸음치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줄곧 방안을 맴돌던 여자의 가늘고 여린 코골이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일상 속을 허우적대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아침에 봐둔 억새풀 군락지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시야확보를 위해 바람에 쓰러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수천수만의 억새가 나부낀다. 향기를 맡지 마라. 이미 그 향기 바람결에 띄웠다. 얇은 종이들이 엉켜져 부비는 이 소리에 귀를 열어라. 희거나 노랗거나 억새 이삭은 계절더미를 다녀갈 것이다. 차마 바람보다 먼저 온 햇살이 머물면 밑동이 굵어지는 시각, 우리의 내면이 살찌는 시각이다. 포커스에 맞춰 연신 카메라 셔트가 눌러졌다. 주위는 찬바람에 적막했다. 하늘만 높았다.  민박집에 왔을 때 여자는 깨어있었다. 여자는 눈으로 어디 갔었냐고 물었다. 나는 카메라를 흔들어 보였다. 마치 대단한 사진작가인양 삼각대와 여러 장비를 둘러맨 어깨도 여자 앞으로 당겨놓았다. 푸석푸석한 여자의 웃음기 안에는 그늘이 여전했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생각난 듯 민박집 아주머니를 찾았다. 방을 한 개 더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웃었다. 서로 맞춰보라고 남녀가 만들어졌는데 방 한 개가 무슨 말인가 하는 얼굴로 또 웃었다. 어느새 뒤에 와있던 여자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있긴 싫어요. 같은 방을 쓸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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