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7)
나는 지금 두 평 남짓한 민박집 방에서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그것도 같은 방을 자의적으로 쓰려는 여자를, 결코 불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열린 시선에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을 앞세우며 말이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외모는 이미 변두리와는 격차가 너무 큰 도회적인 세련됨이라 느꼈다. 뭐랄까. 삶에 대한 억척스러움의 결핍으로 퍼즐을 맞춰간다면 도회적 성향은 쉽게 절망하는 나약함에 도달할 것이다. 물론 내 판단은 국한되었지만, 여객기 사망자 명단에 전부를 의지하고 싶었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죽음 앞에 여자의 선택은 자살이었을 것이다.
번개탄과 소주를 앞세운 여자의 행보를 저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다면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어쩌면 용기는 그렇게 시작되지만 그 용기에 등 떠민 것은 눈에 띄는 여자의 세련됨이 한몫을 했다는 것을 결코 숨기고 싶지 않다. 자신의 외모를 받쳐주는 안정적인 옷차림과 지적인 이미지는 상대로 하여금 쉽게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허나 그런 상대가 위험에 빠졌을 때 불 구덩이도 뛰어드는 묘한 마력에는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나도 그 중간쯤에서 여자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같다. 밤은 서서히 찾아온다.
속마음을 털어놓았거나 침묵했거나 멍하게 있었거나 시간의 무게는 밤으로 쏠렸고 여자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마른 침을 몇 번 삼키면서 주전자로 물 컵을 채워 입을 적셨다. 등을 벽에 기대고 있던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털어놓았다.
“오지수입니다.”
다섯 시간 정도 같이 있어도 통성명 없이 앉아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허긴 통성명을 주고받을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외모와 닮아있는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며 여자의 상체가 조금씩 기울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는 모습에서 조용히 이불을 깔아주었다.
“불을 끌게요. 편하게 누우시죠. 전, 염려하지 마세요. 알퐁스 도데 ‘별’에 나오는 스테파노 아가씨를 지켜주는 목동처럼 오지수님의 밤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닭살스런 멘트를 하고 화끈거려 이내 불을 껐다. 어둠속에서 여자는 누웠고 순하고 여린 숨소리가 이내 들려왔다. 그만큼 고단했는가 보다. 나는 오래도록 뒤척였다. 처음부터 욕정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씩 싹 턴 것 같았다. 수컷의 본능이 꿈틀 댈 때마다 스스로를 억제하며 사타구니에 두 팔을 낀 채 참았다. 어둠속이라 우스꽝스런 몰골이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둠은 어둠을 포개었다. 어둠속에서 내 눈망울이 또랑또랑해졌다.
여자의 숨소리에 귀를 닫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표창처럼 날아와 꽂히는 여자의 숨소리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한 숨만, 눈을 붙이고 싶었다. 한 숨만, 자고 일어나도 거뜬하지 싶었다. 한 숨만, 뜬 밤을 새우지 않아도 좋을 아침을 맞고 싶었다. 그래야 여자를 지켜줄 언덕이 될 것 같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풋잠을 든 것 같기도 한 어렴풋한 내 품속에 여자가 들어와 있었다. 만약 스테파노 아가씨를 지켜 주려든 목동의 얼굴 가까이에 아가씨 얼굴이 있다면 입술만이라도 가지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여자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