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8) 입술은 달고 짜릿했다. 근본적으로 별개의 세상에서 살아왔을 것 같은 여자를 향한 경외감이 한층 몰입감을 가져왔다. 입술에 대한 기대가 온몸을 죄여오더니 벌어진 입에서 마중 나온 혀는 머리채를 휘어잡는 전율이 되었다. 나는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는 흡입력으로 드세게 저항했다. 그럴수록 내 몸은 무장해제 되었고 거친 숨소리만 난무했다. 목젖은 연신 쿨렁쿨렁 거리며 아득하고 뜨거워지는 육신을 여자에게 기꺼이 맡겼다. 깊은 어둠사이로 사박사박 소금밭을 건너는 듯, 어둠의 시간이 바깥에서 나직이 들려왔다. 몸을 뒤척이며 오래도록 여자의 혀를 놓지 않았다.  허연 여자의 속살이 조금씩 어둠속에서 윤곽을 드러냈다. 스스로 벗고 있다고 감지되었다. 손을 뻗으면 체온이 느껴졌고 알몸이 만져졌다. 이대로 세상이 멈춰도 원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자가 내 옷을 벗겨주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곤두서는 촉수가 우우 소리치고 있었다. 수용소에 갇히기 전, 힘없이 투항한 포로였고 수용소에 갇혀, 말 잘 듣는 모범수였다. 더운 입김이 내 귓밥에 머물렀다. 귓밥에 적셔지는 여자의 침은 이미 무색하지도, 무미하지도, 무취하지도 않게 공격적인 선명함이 있었다.  내 알몸과 여자의 알몸이 하나가 되었을 때 새벽을 깬 수탉이 길게 홰를 치고 있었다.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자신의 몸통을 두드리는 날개짓 소리에 더할 수 없는 감정이입이 되어, 생명을 길어 올리는 의식처럼 쉼 없이 여자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까지 사력을 다하는 열정이 내안에 있었던가.  소스라치는 떨림을 전송해오는 하나의 외침, 하나의 화염, 하나의 관통이 폭죽처럼 군데군데 터지고 서로를 의식하지 않아도 깊은 나이테가 새겨졌다.   “아침이 오려나 봐요.” 여자가 말했다.  “이제 어둠이 걷히겠지요.” 창호지가 순해지는 여명의 기운 안에서 내가 대답했다. 내 팔을 벤 여자가 잠을 청했다. 여자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저린 팔을 참았다. ‘독한 어둠 따위, 이제부터 두려워하지 마세요.’ 앞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잠은 혼곤했고 꿈은 요란했다. 목이 졸리는 꿈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눈을 떴다. 얼마쯤 눈을 뜬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육각형 무늬가 촘촘하게 이어져 신비함을 더하여 주었다. 문득, 팔에서 전해지던 여자의 무게는 없었다. 돌아누우며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자세를 바꾸어 돌아누웠을 때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는 흔적만 뚜렷했고 허물을 벗고 날아오른 나비처럼 날아가 버렸다. 왠지 숨이 막혀왔다. 여자에 대해서 아는 건 ‘오지수’라는 이름밖에 없었다. 그 이름조차 확실한지 알 수 없다는 것에 더욱 숨통이 죄여왔다. 발가벗은 채 몸을 웅크리며 아쉽고 사무치게 두려웠다. 짧은 인연이 가져다준 강한 이끌림에 죄스러울 정도로 탐닉했던 본능이 화끈거렸다. 전화번호조차 교환하지 못하고 이런 이별을 맞고 있는가.  먼저 냉정을 찾고 싶었다. 이불을 걷어내고 옷을 입었다. 여자가 벗겨준 옷을 스스로 몸에 채우면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만큼 색깔이 다른 충족감을 여자는 선물해주고 떠났다. 수직적 상승 안에서나 만날 여자이기에 아쉬움은 배가되어 목을 메이게 하였다. 혹시 두고 간 메모라도 있을까 해서 방안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거저 민박집 단출한 세간뿐, 어디에도 여자의 ‘다음’은 없었다. 내 알몸은 여자의 알몸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1 21:21:49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