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10) 나는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자의 죽음이 마치 원인제공을 한 장본인처럼 느껴져 공황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지만 민박집 방안은 여자의 숨소리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뭉텅뭉텅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안에 무엇을 떨쳐내기 위해 휴가의 빌미로 찾아든 만강읍에서 이 고통은 무엇이란 말인가.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몸을 뒤척거려 보지만 매끈거리는 알몸과 번개탄 중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죽음만 확대되어 머릿속을 채울 뿐이었다. 두렵다. 불에 덴 듯 후다닥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거기, 여객기 추락으로 화염에 쌓였던 야산이 검게 그을린 채 흉물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생존자 없는 무수한 원혼들이 이름 없는 야산에서 생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원통했다. 그리고 전율로 한기를 느꼈다. 저 원혼 중 한명을 찾아온 여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타지에 떠도는 영혼들의 기막힌 절규는 어찌할거나. 고개를 떨어뜨리며 창문을 닫았다. 뜻하지 않게 그들의 죽음 속으로 들어와 나는 괴로워한다. 정확히 무엇에 대한 해결방안도 찾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는 내가 거울 속에 보인다. 저렇게 생긴 얼굴이 나였던가.  찡그리거나 움직일 때마다 거울 속도 따라한다. 거울 바깥과 안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저토록 하염없는 세상사를 오롯이 새기며 살아온 내 표정이 싫어서 밖으로 나왔다. 읍내 약국에서 진정제라도 사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혼란과 혼돈이 내내 발목을 잡거나 욱하는 심정으로 큰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차를 몰아 읍내로 들어왔다. 쉽게 약국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묻지도 않고 여기저기 차를 몰았다. 평일 도로는 한산했다.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가져갔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로의 영역 안에서 산자와 죽은 자가 구별되어지는 것이다. 신통할 것도 없는 그것이 신통방통했다. 읍내 구석구석을 차를 몰다가 건널목에 이르렀다. 내려진 차단기 앞에 멈춰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이제껏 맛보지 못한 기다림이었다. 차단기가 전진을 막았고, 몇몇의 사람들과 몇몇의 차들과 소리를 낮추어 멈춰있었다. 이 공간은 멈춤과 전진이 적절히 배합되어 하나의 조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누구도 투정하지 않았고 반항하지 않았다. 모두 규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순종하는 반듯한 모두의 마음에 안도하고 있었다.    순간, 내 동공은 튀어날 정도로 확장되었다. 차단기 건너편에 여자가 서있었다. ‘오지수’가 내차를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번개탄을 피워 당연히 자살했다고 믿었던 오지수가 차단기 건너편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쩌면 차단기를 경계로 이승과 저승이 나뉘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썬팅한 차 유리 너머의 실체가 허상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으로 운전석 창문을 열어 목을 길게 뺐다. 오지수의 거짓말 같은 진상을 만나고픈 간절한 마음이 앞선 탓일까.  옆구리 걸림도 무시한 채 차단기 건너편을 응시했을 때 기차가 건널목을 지나갔다.  간절하고 절실했지만 나는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난히 많이 연결된 여객열차가 건널목을 지나가는 사이, 조바심에 오줌까지 마려웠다. 기차가 지나간 것을 확인한 건널목지기가 차단기를 올리자 멈춰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 오지수는 없었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한 내차 꽁무니에서 빵빵 울려대는 클랙슨 소리를 들었다. 건널목지기가 필요 이상으로 두 팔을 휘젓고 있는 것도 보였다. 나는 미친 듯 핸들을 놓은 채 악악 소리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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