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1)
지금 당신은 육교 아래를 지나고 있습니까. 육교 위를 지나고 있습니까. 하나는 당신의 발걸음이고 하나는 당신의 네비게이션입니다. 어디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촛농처럼 녹아내려 힘겨워진 삶을 빠져나가는 남루한 시간의 뒤태만 보일 뿐입니다. 그곳을 지나왔다는 것만으로 목맨 한시절도 거기, 인적이 드문 날을 골라 두고 오십시오. 가슴속에 파도소리가 부서지거든 찾아간다는 핑계로 길을 나서십시오. 육교는 서슴없이 그런 자유를 바랄 것입니다.
예전의 시간은 어느덧 저물었지만 둥글게 말아 체온을 유지하며 잠을 청했던 젊은 날은 내게도 있었습니다. 바다가 그리 탐이 났는지 한 귀퉁이에 버려진 폐선을 깨웠습니다. 너무나 낯선 마산만 부두에서 말입니다. 고등학교 졸업도하기 전 야반도주한 청소년기의 격동적인 감정만 무성했고 주머니는 얇았습니다. 통제가 되지 않은 과격한 몸짓으로 목적지도 아랑곳하지 않은 체, 먼저 온 기차에 무작정 몸을 실었고 세상을 찾아가는 마음가짐은 비장했습니다.
승무원의 눈을 피해 기차 문손잡이에 매달렸습니다. 충분히 떳떳해도 되는데 왜 그리 몸을 낮추어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마치 승무원이, 주머니 속까지 꿰뚫고 있다는 염려가 주눅 들게 한 모양입니다. 나는 무임승차였습니다. 속도가 느린데다가 모든 역에 정차하는 비둘기호는 검표가 허술했습니다. 이미 문손잡이 근처에 터를 잡은 껄렁껄렁한 일행이 다른 곳으로 가라는 액션에 버티지도 못하고, 요동치는 연결 이음새를 밟으며 옮겨 다녔습니다. 다행히 기관실로 이어지는 칸에는 장날 내다 팔 보따리가 소복했고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석탄을 연료로 운행하는 기적소리는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쩌렁쩌렁했습니다. 사방팔방 날아다니는 그을음에 매캐한 석탄냄새까지, 무임승차이기에 참을 만 했습니다. 생선비린내에 묵은 김치냄새에 황폐한 서로의 눈빛과 몰골은 비둘기호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면 내려야겠다고 기차 밖 풍경을 힐끔 거리며 몇 번 다짐을 하던 차에, 선물처럼 모양을 갖춘 바다가 드러났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집을 버린 내게 손을 내밀어주는 기름진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등짐보따리처럼 어떻게 역무원의 눈을 피해 빠져나가려는 의도가 발각되자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목덜미를 잡은 역무원의 손은 두툼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역장실에 끌려가 등받이 없는 둥근 나무의자에 앉혀졌습니다. 겁에 질려있어선지 나무의자가 전해주는 냉기는 사타구니를 오므라들게 만들었습니다. 역장의 훈계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본능적으로 훈계 방면 쪽으로 가닥이 잡혀갈 거라 생각이 되어졌습니다.
역시 박카스 한 병을 건네받고 뉘엇뉘엇한 햇살을 따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로 바다를 향했습니다. 마산만 부두에 정차한 버스는 소금바람 가득한 곳에 내려놓으며 꽁무니가 멀어져갔습니다. 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먼 곳의 바다 소리를, 귀를 열어 담았습니다. 노을이 부서지는 바다는 저토록 황홀하고, 하루살이 떼처럼 하늘과 바다가 한 몸처럼 어우러져 날고 있었습니다. 감히 푸른 생애가 펄떡거리며 안부를 물어오면서 나의 치기는 파도더미 앞에 마냥 서있고 싶은 저녁이었습니다. 가만히 흐르는 눈물도 손등으로 닦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