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4)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뺀 지폐를 꾸깃꾸깃 움켜쥐어 지금의 심정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먹힐지 모르지만 한마디 덧붙이며 건네주었습니다.
“등록금인데요.”
학생에게 등록금이 얼마나 절실한지, 비록 뺨 한대에 물러서있는 미경의 만류도 약간은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골목 안은 정박한 배들의 밑창을 두드리는 파도소리만 엎질러져 있었습니다. 되바라지게 근육이 많은 어깨가 내 돈을 건네받으며 위로삼아 말을 건넸습니다.
땡땡이 치는 놈에게 쭉 땡땡이 치라고 등록금을 압수하는 거야. 고맙다고 하지 못할망정 왜 거지쌍이야!”
미경을 따라 들어온 골목 안에서 원나잇을 기대한 건 맞지만 이런 결말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밉상처럼 생긴 옆에 있던 다른 어깨가, 역시 밉상처럼 끼어들었습니다.
“만약 주머니에서 이후에 지폐 한 장이라도 튀어나오면 눈팅이가 밤팅이가 되도록 맞을 줄 알아.”
순간 흠찟 놀라 몸이 경직되었습니다. 사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마라는 주식격언에 맞춰 양말 속에 숨긴 지폐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마침내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어찌나 섧든지 원나잇 하지 못한 청춘을 향해, 멀쩡한 주머니를 털리고 대항 못하는 새가슴을 향해, 곧 들킬 양말 속 생때같은 지폐를 향해 목이 터져라 울었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맞닥뜨리지 못한 외계인을 피하듯, 어깨들과 미경은 투덜거리며 골목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소란하게 하는 것도 삼십육계 다음으로 대단한 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졸린 눈으로 부대찌개 주인의 얼굴이 잠깐 비춰졌지만 이내 사라졌습니다. 골목 안은 다시 적막했습니다.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붙일 생각에 걸음을 옮겼습니다. 문득, 터미널 분수대 앞에서 멈췄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어 허기진 배를 채웠고 눈물범벅의 얼굴을 소리 내어 씻었습니다. 그제야 어깨들과 함께 사라진 미경을 떠올렸습니다.
어깨들과 미경은 한패거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분한 마음을 좀체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골목 안으로 끌어들인 뒤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뭉개든 미경의 모습이 퍼즐처럼 맞춰졌습니다. 뺏기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사람은 봤어도 예기치 않게 대성통곡은 처음이라 그들도 당황하여 함께 움직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때리는 쪽이나 맞는 쪽에서도 뺨 한 대는 어설픈 연기였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워낙 겁에 질려있어서 알아채지 못했을 뿐, 허긴 알아채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내게 어깨들의 주먹질이 가해지거나 어쩌면 미경의 손맛을 고스란히 맛보게 되는 상황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등록금의 일부분이 갈취당한 지금의 처지에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대합실 안은 새벽차를 기다리는 몇 사람과 선잠을 청할 몇 사람과 노숙자 몇 사람이 둘레둘레 장작난로 곁에 모여, 하얗게 쌓이는 소금바람에 귀를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연통의 온기로 굳은살처럼 졸린 눈을 무겁게 닫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