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11) 아내가 움직이는 반경 반대 방향에서 미경과 연애는 시작되었습니다. 열여덟 살의 치기와 무임승차한 비둘기호 열차와 마산만 부두의 미경을 다시 소환하여, 몽환적이며 에로틱한 요소를 첨가한 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관객은 없지만 최대의 감정이입으로 시나리오에 충실하려 노력했습니다. 좌옥경이 아닌 이미경으로 배역이 떨어졌지만 결코 투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시들기 직전의 꽃잎에 생살이 돋아나 다시 활짝 피어본다는 눈빛에서, 의욕의 충만함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산만 부두를 보고 싶어요, 단지 더 실감 있는 연기를 위해서겠죠.” 어느 날 미경의 제의에 순간 놀랐습니다. 저토록 충실히 주어진 배역을 소화하기 위한 준비와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적극적인 몸짓에 대해서 말입니다. 회사에서는 이박삼일 연차를 썼고 아내에게는 이박삼일 출장을 끌어들여 마침내 떠나기로 한날, 무심코 던진 시선에 낯선 풍경이 포착되었습니다. 미경의 아파트 울타리에 우렁우렁 꽃을 피웠던 쉼 없던 장미가 한 세월을 보낸 채로 낙화하고 있었습니다. 바닥은 생을 다한 꽃잎이 쌓이고 선혈범벅 그대로 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를 듯 눕고, 곧추서고, 남루하게 바람결에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동시에 쳐다보며 눈물이 촉촉하게 젖어들었습니다. 감성적 코드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에 미경의 손을 잡으며 체온을 전해받기도 했습니다. 마산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습니다. 코로나를 이겨낸 사람들만의 차들이 제한속도를 넘지 않는 속에서 앞지르거나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간헐적 비린내가 풍기는 IC를 빠져나가며 미경은 혼잣말처럼 키득거렸습니다.  “내가 미쳤나 봐요. 세 시간도 넘는 여길 왜 오자고 했지.” “내 몸에 박힌 옹이를 빼주려고 한건 아닐까요?” 미경의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나름대로 편하게 해석하며 마산만 부두 주차장에 정차했습니다. 주변 음식점에서 자신의 가게로 끌어들이는 호객의 손짓과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눈으로 ‘배고프냐’ 물었고, 눈으로 ‘아직’ 미경이 대답했습니다. 부둣가의 방파제를 거닐었습니다. 이십년 전 어리벙벙하고 얼떨결에 찾아든 마산만 항구는 왠지 거칠고 단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둥지에서 벗어나 여린 날갯짓으로 푸덕이던 나의 질풍노도에게 안부를 물으며 한 발을 옮깁니다.  곳곳에 들어선 상점들이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먼 비린내를 싣고 와 해변에 부려놓은 파도조차 이십년 전 그대로라는 생각이 엉켜들어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미경은 방파제에 앉았습니다. 빙의된 이십년 전 미경처럼 관심을 끌기위해 머리카락은 바람에 나폴 거리고 있었습니다. 흑백에서 칼라로 선명하게 변신하듯 멈칫, 뼈 마디마디에 감춰져있던 울분이 살아났습니다. 전화가 울렸고 아내였습니다.  “식사는 절대 거르지 마세요. 서방님.” 그러고 보니 때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내 안에서 고개 숙였던 주먹을 꺼내 수없이 어퍼컷을 허공에 날렸습니다. 그리고 백사장을 향해 뜀박질 하면서 괴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긴 방파제에 걸터앉은 미경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목젖까지 차오르는 뜀박질이 멈췄을 때 어느새 주차장 어귀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차문을 열어 시동을 걸었고 마산 부두를 당당하게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단지 미경을 예전의 그 길에 두고 왔습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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