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미터 상공(1) 저물 무렵, 골목을 따라 걷습니다. 가로등이 바람에 투덜거립니다. 두 세 사람 드나들면 빠듯한 골목에서 심심찮게 길고양이들을 만납니다. 검정, 얼룩, 노랑의 고양이들이 골목 안을 휘젓고 다닙니다. 마치 영역표시라도 한 듯 당당하고 거침없는 몸짓에서 괜히 주눅이 듭니다. 횟집 수족관에서 훔쳐온, 숨이 붙어있는 생선을 발기발기 찢을 때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기도 합니다. 저 야성으로 금방이라도 털과 발톱을 곤두세우고 덤벼들 것 같은 전율과 공포를 느낍니다. 물론 쫓으려고 한 적도 있었지요.  소리를 지르면서, 한발을 들어 내리치기도 하면서, 만물의 영장을 내세우기 하면서 차별화를 두고 싶었습니다. 잠깐 겁먹은 표정을 읽은 것도 같지만 길고양이들의 반격은 곧바로 날아왔습니다. 덩치 큰 검정의 포효가 순식간에 무리에게 전달되었고 허리를 곧추세운 공격 자세를 다들 가감 없이 취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무기를 대신할만한 도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한걸음 뒤로 물러섰고 그것만으로 서열정리가 깔끔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벽에 바짝 붙어서 걸어가는 루저와 골목 통로를 다 차지하는 길고양이들의 대비가 한 화면에 잡혔다면 혹자는 ‘동물사랑’으로 포장해 주기도 하겠지요.  나는 다락방동네에 삽니다. 계단 개수는 세지 않았지만, 늘 중간에서 포기하고 싶은 곳에 다락방 동네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천장이 낮고 더위와 추위에 취약한 값싼 건축소재로 전형적인 날림공사가 88올림픽이후에 성행 되었다지요. 처음에는 임시방편이라 설득하여 사람들을 이주시켰지만 담당공무원이 몇 차례 바뀌어도 그곳에 사는 것은 여전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무원행정이 그렇듯 다락방 동네 마을 사람들도 굳은살로 한 생애를 넘기려 작정하고 말았습니다.  동네 밖에선 한 달을 버틸 방세가 세 달로 맞먹을 때 하늘과 맞닿는 계단과 자연히 친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밖 큰 도로로 나가는 길은 엄연히 있지요. 그렇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는 지름길은 이십분을 단축시켜 줍니다. 좀 길고양이들의 눈치를 보는 찌질이가 되면 어떻습니까. 무료급식소에서 한 끼 해결을 위한, 시간과 싸움이 필요할 때만 골목을 이용할 뿐 느릿한 걸음으로 하루해를 넘기기 일쑤입니다. 소매치기 걱정도, 퍽치기 걱정도, 강도 걱정도 없이 한눈에 봐도 궁색해 보여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지만, 자격요인 첫 번째가 가난입니다. 가난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그런 구색을 갖추는데 손색이 없습니다. 두 번째가 게으름입니다. 알고 보면 누가 앞섰는지 뒤쳐졌는지 오십 보 백보의 승부차가 있긴 합니다. 가난과 게으름은 찌질이의 간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 부차적인 것으로 한 계절을 뛰어넘은 옷매무새며 시장좌판에서 볼법한 색상이며, 세상 파편을 다 맞은 썩은 동태 눈알까지 뒷받침 된다면 천하무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건대 상점 쇼윈도우에 비친 몰골에서 쉽게 접수되긴 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서른 두 살, 한 남자가 참담하게 개미지옥에 빠져 살 의욕을 점점 상실해가는 데서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언젠가 한 번 비루한 젊은 인생 말미를 쓸까 별렀는데 그 시점이 지금인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을 쓰기위해선 나부터 비루해져야겠다는 각오도 다집니다. 접신한 서른 두 살의 남자가 내가 되어야겠지요. 누구도 말리지 마시길 당부 드립니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1 21:20:31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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